기고/우리집 사진첩

시간이 무료하다거나 따분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종종 우리집 사진첩을 꺼내 놓고 들여다봅니다. 우리집 사진첩에는 내 어린 날의 학창시절을 담은 추억에서부터 군대 시절, 신혼생활, 문학의 길에서 만난 다정한 얼굴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인물과 추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내 눈을 오래 붙잡는 것은 아이들과 보낸 결혼 초의 사진입니다. 어린이날 원천 유원지에 가서 찍어준 사진, 피서 비용을 아낀답시고 물통에다 아이들을 집어넣고 풀장 기분을 한껏 내주며 찍은 사진, 눈이 내렸다고 성에 데리고 올라가 찍어준 사진, 졸업식을 마치고 나와 경양식 집에 들어가서 찍어준 사진 등등.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웬지 가슴이 아려오면서 또 한편으로는 흐뭇해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박봉의 살림으로 양친까지 모셨던 신혼초의 그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나서고, 가슴이 흐뭇한 것은 올망졸망한 어린 것들의 손을 잡고 아내와 보낸 그 시절이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결코 가진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또한 큰 것에 있지도 않으며 외양이 화려하지도 않다는 것을. 오히려 보잘것 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에 있으며 그 빛깔은 수수한 색깔을 띠고 있다는 것을.

사실이 그렇습니다. 지난날에 비하면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많이 나아진 상태지만 행복의 체감도는 그 때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살이에는 물질이 오히려 삶의 그 담박한 맛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웃음이 나서 배를 잡는 사진이 한장 있습니다. 용인 에버랜드에 가서 찍은 가족 사진인데 우리 둘째 아이가 제 여동생의 손에 들려쥔 아이스크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내가 사진 찍는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둘째 아이는 제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제 여동생의 것까지 욕심이 나서 사진 찍는 것에는 아예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으면 저렇게 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명치 끝이 아려옵니다.

하지만 그런 사진이 있으므로 해서 우리 집의 사진첩은 소중한 것이 되고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에 그런 사진 대신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지냈던 사진들만 들어 있다면 지금처럼 자꾸 보고 싶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낙보다는 고생,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입니다. 작은 것이야말로 인생의 삶에 깊은 의미를 준다는 것이지요.

거리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의 작은 미소 하나가 오늘 하루를 밝게 열어가는 키가 될 수도 있고, ‘고맙습니다’하는 한마디의 따뜻한 인사가 힘겨운 하루의 삶에서 위안과 격려를 동시에 얻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는 이래서 앞으로도 더욱 작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저장하려고 하며 이왕이면 동화의 소재로도 야금야금 아껴가며 갉아먹을 작정입니다.

/윤수천.동화작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