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찾아다니는 예술무대

찾아다니는 예술무대! 이 사업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유학시절 프랑스의 조그만 도시 모그비옹에서 겪었던 옛일이 떠올라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우연치않게 이뤄진 첫 거리극 출연은 정말 잊을 수 없는 흐뭇한 기억이기도 했다. 감기로 갑자기 출연을 포기했던 친구의 대타이긴 했어도 말이다.

나에게는 첫 거리공연이었고, 더구나 첫 야외무대이어서인지 거리극 도중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마을 공원에서 펼쳐지는 야외공연의 무대는 너무 넓었고, 중간중간 자리를 뜨는 사람과 끼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좀처럼 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다음 대사가 생각이 나지않아 멍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즉흥적으로 한국말로 대사를 읊으며 위기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새롭게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프랑스 관객들은 무대 위 동양인의 연기도 관심거리였겠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감정에 몰입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또 하나의 새로운 공연을 접한 듯 집중하며 호응해 주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있어 ‘첫’ 자가 들어가면 웬지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데 의외의 좋은 결과에 흡족해 하기도 하지만, 때론 문자 그대로 처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아쉬움도 있게 된다.

경기도내 문화소외지역 그리고 이동인구는 많으나 문화활동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지역을 찾아가 공연을 통해 도민에게 문화향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 올해로 5년 된 ‘찾아다니는 예술무대’다. 경기도내 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재단의 문화예술단체 지원사업과는 달리, 문화향수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찾아다니는 예술무대는 전국에서 우수한 단체를 발굴하기 위해 올해는 공모라는 방법을 택했다.

이 사업을 맡았을 때 사업에 대한 부담감과 성공적으로 이끌어 보겠다는 의욕 이상으로, 이 사업을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과의 친밀성이다. 더 다양한, 더 좋은 공연물이 더 가까운 형태로 관객의 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 예로 ‘예술의 나라, 문화의 나라’로 자타가 인정하는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저녁 황금시간대인 8시에서 10시 사이 TV 앞으로 몰려들지 않는다. ‘중독성’ 이 다분히 내포된 연속극이 방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 시간에 프랑스인들은 공연장으로 향한다. 겹쳐 앉아도 100석이 채 안되는 아주 작은 동네 소극장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규모 공연장까지 그들은 프로그램을 달리하며 매일밤 문화예술을 즐긴다. 이것도 성에 안찬 듯 주말에 행해지는 다양한 거리극과 갤러리를 쉴새없이 찾아다니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어느 공연장을 가도 극장의 규모와 공연물만 다를 뿐,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본 것을 토론하고 때론 수다를 떨며 앞으로 이어질 공연물에 대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번에 공모를 처음으로 실시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에는 도민에게 더 많은, 더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촉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사업의 성공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단체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고 이를 위해서는 공모라는 방식이 타당할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번 사업 목적이 앞서 말했듯이 주민의 문화향수 증대에 있었기 때문에 목적에 맞는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단체에 대해서는 지역 제한없이 응모기회를 부여했다. 결국 실내악, 춤극, 연극, 마당극 등 각기 다른 장르에서 4개 단체가 선정되었고, 이들 단체들은 기차역, 교도소, 등산로, 장터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이 사업이 주민의 생활 속에 더 굳건히 ‘자리매김’ 되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의욕이 다소 앞섰던 것이 오히려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경기도내 단체가 1개만 선정되었다는 것은 당초 사업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첫 테잎을 끊은 사업이기에, ‘첫’자에 으레 따라오게 마련인 아쉬움을 뒤로 남겨놓은 채, 필자는 경기도민이 울고 웃고 함께 춤추게 될 ‘찾아다니는 예술무대’의 공연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김강미.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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