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을이 아름다운 까닭

K형, 가을 바람과 함께 우편물 속에 청첩장이 한두 장씩 꼭 끼어 들어옵니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엔 잘 아는 분한테서 주례를 서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날 나는 나도 모르게 “아, 가을은 역시 짝짓기 계절이야!”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은 역시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과일이 오랜 기다림 끝에 단물이 들듯이 사람들도 짝을 찾아 결실을 맺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한가지 좀 맘에 안드는 게 있습니다. 요즘의 결혼은 웬지 너무 겉치레적이고 사치스러워서 정감이 안 갑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마음과 마음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조건과 조건의 결합처럼 여겨져서 마치 무슨 장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K형, 나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는 것을 보다 보면 우리 집사람과 결혼했을 때의 생각이 나서 혼자 웃습니다.

요즘의 결혼에 비하면 우리 결혼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한창 추운 1월에 난방도 들어오지 않은 농협 강당에서 덜덜 떨며 결혼식을 치렀으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집도 없어서 남의 전셋집에서 양친을 모시면서 방 한 칸을 장롱으로 가려놓고 신혼 살림을 차린 것을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급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답니다.

집사람과 맞선을 보았던 일은 더더욱 우스웠지요. 그 날은 눈이 엄청나게 내려서 버스도 안 다녔기 때문에 집사람은 나를 만나기 위해 3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읍내까지 나왔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본 순간, 다른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저 여자가 다시 30리의 눈길을 걸어서 갈 일만 아득히 떠오르더란 말입니다. 만약에 내 쪽에서 싫다고 한다면 저 여자는 얼마나 상심한 채 그 먼 길을 도로 걸어가야 할까 생각하니.

K형,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집사람을 구원(?)하기라도 한 것처럼은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좀 더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 보겠다는 겨를을 ‘30리의 눈길’이 거두어 간 것뿐이니까요. 그 자리에서 확답을 한 것은 내 운명의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날에 비하면 요즘의 맞선은 그냥 한번 만나보는 정도로 쉽게 치러지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상대방을 저울질하고 남과 비교하기까지 하면서 무슨 물건 고르듯 하잖습니까. 이것도 또한 맘에 안 듭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의 이혼율이 높은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사람 고르는데만 똑똑해졌지 함께 노력해서 사는 데는 하나도 똑똑해지지 않았다고요.

K형,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성경 구절 가운데 이 글귀를 참 좋아합니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나중은 장대하리라’는 글이지요. 시작은 좀 어설프더라도 서로 노력하여 목적한 바를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보람을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일 하나가 익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나를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인생도 과일과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윤 수 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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