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은 우리나라 사람의 사망원인을 암(1위), 뇌혈관 질환(2위), 심장질환(3위), 당뇨병(4위), 천식 및 만성기관지염 등 만성하기도 질환(5위) 순으로 발표하였다. 지난 한해 교통사고, 건물붕괴 및 화재·홍수로 수천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그래서 각종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생명보험, 자동차보험, 암보험 심지어 자녀안심보험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깨알같이 적힌 보험약관이 흡족해서가 아니라 보험가입을 하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약간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어려움이나 보험이 주는 혜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9월13일 오후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이사벨은 여름내내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태풍 매미 못지 않은 괴력을 보였다. 이사벨이 미국 동부지역을 상륙해 북진하면서 ‘열대성 태풍’으로 약화되는 15시간동안 사망자는 9명에 그쳤다. 물론 350만명이 정전사태를 겪고 25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망자중 7명은 폭풍 속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니 매미가 한반도 내륙을 관통했던 6시간동안 무려 12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한 우리의 현실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이사벨 상륙 전부터 대통령이 직접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관공서가 문을 닫는 등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재난대비에 철저한 시스템이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일사불란한 행정당국의 조치와 이를 믿고 따르는 시민들의 안전의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2001년 9·11 테러는 미국으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테러였다. 공격대상 및 발생장소 등의 면에서도 그러했다. 이같은 전대미문의 대규모 테러는 미국으로 하여금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하였다. 또한 테러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많은 나라들은 국내적으로 반 테러 법을 새로이 제정하거나 기존의 법을 대폭 보완하기 시작했고 국제 테러의 표적인 미국은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국제테러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2001년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테러방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입법적인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삼풍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사고 등 수없이 많은 소를 잃으면서도 외양간을 고쳐 온 쓰라린 경험으로 현재 정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신설을 서두르며 재난에 대비한 체제를 정비해 가고 있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제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처를 배워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공항에서의 보안검색 강화 등 성가시고 약간 불편한 새로운 것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불평하지 않는 미국인의 시민의식을 한번쯤은 생각해보자. 그들의 시민의식이 훌륭해서일까. 필자는 수십년간 테러의 표적이 되어왔던 그들의 역사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때로 사생활 침해가 가능한 것도 위협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 아닐까. 일본의 ‘동경 지하철 독가스 테러’가 한 종교단체가 일으킨 사건임을 상기한다면 우리나라도 테러의 안전 지대는 아니다. 금년초 청산가리 6천배의 맹독성 물질인 ‘라이신’을 제조한 혐의로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원이 검거되는 등 전세계에 생화학 테러위협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각종 보험을 드는 정성이 필요한 때이다. 정부는 2001년부터 테러방지법 입법을 추진 중에 있다. 강력한 법을 가지고 국민의 생존과 재산을 지키는 정부와 안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미국의 ‘예’를 ‘타산지석’ 삼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박철진.화학물질안전관리센터 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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