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부자는 있지만 귀족이 없다고 한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존경받는 계층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이라는 말이다. 제대로 된 상류층이 없는 사회는 엔진 없는 자동차 같은 사회이고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돈더미 사진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을 것이다. 洪모씨가 거래처에 회사어음을 발행하고 이를 지급한 것처럼 장부를 꾸며 90여억원을 횡령했고, 그 중 75억원을 7백50개의 다발로 쌓아둔 것이었다.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창업한 알토란같은 회사에서 그 아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빼내 아버지도, 회사도, 주주들도 속였을 뿐만 아니라 빌라를 금고 삼아 돈더미를 보관하는 어이없는 모습에 아연해질 따름이다.
그렇지만 재벌이 아닌데도 사회공동체에 앞장서 모범을 보인 분들이 있어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전 재산 1천3백5억원으로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에 환원한 송금조 태양 회장이나 교통사고로 잃은 딸을 기리기 위해 사재 50억원을 털어 도서관을 건립하는 이상철 현진어패럴 사장은 가정이란 공간을 넘는 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사가들은 로마제국이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노블레스 오블리제’에서 찾지만 로마 귀족들만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있었던 게 아니다. 조선의 양반들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쳐 의병으로 봉기했고 하급계층의 어려운 사람들과 아픔을 같이 했던 일이 수없이 많았다. 구례 운조루의 유씨 집안은 뒤주를 마련해두고 굶는 사람들이 망서림없이 퍼갈 수 있도록 했었고, 정읍의 김영채는 흉년이 들자 면 전체의 세금을 내주었으며, 안동의 김계행 집안, 영양의 이시명 집안, 순창의 양사보 집안, 안동의 학봉 집안도 나눔의 철학을 남몰래 실천해온 가문들이다.
이제 우리는 나눔은 부자만이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이제 추운 겨울을 맞는 시점에서 이런 마음이 합쳐져서 우리 사회도 좀더 훈훈해지길 기대해 본다.
/소병주.경기도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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