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 자율화로 학교가 한동안 토론 열풍에 휩싸여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의 이야기인데 하루는 퇴근하려고 버스정류장에서 있는데 대여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 아이들은 인사를 잘하는 편이어서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아주 친밀한 느낌이 들도록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뭔가 주문할 게 있어서였다.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도 모 고등학교처럼 머리 길러서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하게 해주세요” 이구동성이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멋쟁이시니까 우리 마음 잘 아시잖아요?”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물론 좋지. 머리 염색하거나 파마를 해서 너희들의 학교생활이 즐겁고 학습에 도움이 된다면 머리를 박박 밀건 봉두난발을 하건 땅끝까지 기르건 무슨 상관이겠니. 그러나 이 문제는 나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머리 모양을 마음대로 하는 일은 너희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모두의 관심사란다. 너희들의 자유의지와 멋낼 권리도 중요하지만 뒷바라지하는 어른들의 교육적 시각도 중요하니까. 만약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70% 정도만 찬성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 곧 교사-학부모-학생 대표회의를 열어서 결정하겠다”고 답변하였다. 물론 회의 결과는 머리길이를 약간 자유롭게 하는 선에서 자율성을 부여하자고 결론이 났고 그렇게 시행하였다.
얼마 전에는 관내 중학교 교장 선생님과 운영위원장님으로부터 학생들을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시켜야 한다는 일부 교사들의 운동에 애를 먹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물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이 전적으로 학생들의 성장·발달을 조력해 주는 활동이므로 학교 교육과정의 편성·운영 및 과정과 평과 전반에 걸쳐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경영에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 운영은 학생들이 관여할 부분과 그렇지 못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았다고 해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하는 회의에 가서 감놓으나 배놓으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정책을 결정하는 데 일일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떤 것이 합리적이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것인지. 가령, 아이들이 어떤 과목을 쓸모없으니까 없애자고 하건, 어떤 선생님은 실력이 없다느니, 재미없다느니 하면서 선생님을 바꾸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주어야 한단 말인가. 과연 자율적인 것만이 능사인가. 그리고 학생들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길러주는 활동이 꼭 운영위원회에 참석하여 발언하는 것 밖에 없는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의 지혜를 활용하는 창구가 그런 형태일 수 밖에 없는가.
아이들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운영위원회에 참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사의 생각에는 혹 어른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려는 마음이 끼어든 건 아닌지, 아니면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는 엄마가 자녀에게 과보호나 과잉 제스처를 쓰는 것처럼 아이들의 인심을 얻으려는 건 아닌지, 그리고 만약 우리 학교에서도 그런 제안이 나온다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지 잠시 걱정을 해보았다.
아이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길러주는 교육,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김현옥.수원 수일중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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