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자랑은 여럿이 있지만, 그 중에 수원 입구에 장승들처럼 서있는 노송들을 빼놓을 수 없다. 노송들은 허리춤에 일체의 잔가지를 내지 않고, 우아하게 서 있는 기품이 아름답다. 풍상을 힘겹게 견디고, 고뇌의 표정으로 서 있는 노송들의 모습을 보면 탐욕과 세속을 멀리하기 위한 선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지역의 노송들은 유서 깊은 역사가 있다. 이 노송들은 조선 정조대왕이 아버지(장헌세자, 일명 사도세자)를 생각해 원침인 현륭원(지금의 융릉)의 식목관에게 내탕금(궁궐에서 쓰는 돈) 1,000량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그루와 능수버들 40그루를 심게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곳은 정조대왕이 능 행차 중 송충이를 이로 깨물어 솔잎에 붙은 송충이들이 모두 땅에 떨어졌다는 고사가 함께 전하기도 해, 찾는 이들에게 정감을 더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이곳은 경기도기념물 제1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현재 시는 노송지대 외곽 300m 이내에 문화재보호법을 적용, 건축 인·허가 등을 관련부서와 협의토록 하는 한편 노송마다 고유번호까지 지정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의 이러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이곳 노송들은 차츰 고사(枯死)하고 있어 안타깝다. 우선 노송지대를 지나다보면 주변에 대형 갈빗집들을 보게 된다. 이 건물들은 자연 풍광을 차단하고, 이곳으로 인구 유입을 불러 노송들의 생육 상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또한 언제부턴지 노송지대 인접지역에 대규모 자동차 매매단지가 조성되었고, 지금도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현재 시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이곳을 관리하고 있지만, 필자는 이번 기회에 노송을 보호할 좀더 적극적인 정책을 건의하고자 한다. 우선 가장 먼저 노송로에 차량 통행을 금지하는 시책을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현재 이곳 노송들은 자동차 매연에 노출되어 있어 급속히 쇠약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곳에 차량 통행을 제한 한다면 노송을 보호하고, 아울러 주변 문화재 관리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곳 주변의 음식점들이 매출 감소 등을 우려해 반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이면 도로를 이용하면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노송로에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노송지대가 문화재로 보호받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영업 이익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기대된다. 특히 이 주변은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시민들의 휴식 장소로 제공한다면, 쉼터는 물론 문화 공간으로도 정착하게 된다.
노송지대는 정조대왕이 아버지가 묻힌 현륭원은 물론 화성이 보이지 않게 되자 거동을 멈추고 한참동안 머물렀던 지지대고개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노송지대 끝물에 수원에서 유수 및 부사를 역임한 공적비 및 선정비 등이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파리가 한복판의 유서 깊은 마레지구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면서 현대적 기능을 갖는 장소로 조성해 새로운 문화관광요소가 되었고, 가까운 나라 일본 교토 등도 역사 도시의 전통 거리를 그 지역적 특성에 맞게 꾸며 오늘날 주민이 살기에 편하면서도 사랑 받는 시로 조성한 것처럼, 노송지대 주변도 하나의 문화벨트로 지정해 중점 개발하면, 문화 관광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원은 도시 속에 옛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보기 드문 도시이다. 이곳은 우리 민족의 역사이고,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노송지대의 노송들은 정조대왕의 효심이 함께 어린 무형의 자산도 함께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동안 200년이 넘는 세월에도 우리 곁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는데, 우리가 이러한 애틋한 서정까지도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남기고 싶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멀리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윤재열.수원 장안고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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