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 대니 힐리스, 1970년대 슈퍼컴퓨터의 선구자였던 대니 힐리스는 현재 캘리포니아州 글렌데일에 있는 발명전문회사인 어플라이드 마인즈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에 대해 잘 아는 개인교사가 있다면 그는 내가 흥미를 갖는 것이 무엇이고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내 경우는 초등학교 시절 도서관 사서가 그 역할을 했다. 난 암석에 관한 책을 좋아했고 그녀는 그런 책을 내게 계속 가져다 주었다. 하루는 그녀가 전기에 관한 책을 갖다주면서 ‘아마 이 책도 좋아할 걸’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는 바로 그런 소프트웨어를 발명할 생각이다. 검색 엔진은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발명하려는 소프트웨어는 학생에게 책을 갖다주며 ‘아마 네가 이 책을 좋아할 거야’라고 말하는 훌륭한 사서와 같은 자동화된 개인교사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지적 욕구에 따르는 자료와 정보를 안내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인쇄매체 시대에는 종종 한 권의 책이 개인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일화가 있었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아도 청소년기에 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상상하곤 하였다. 책을 통하여 위대한 영혼과도 교감하고 책을 통하여 가보지 못한 이국적인 것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에 졸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책을 통하여 저 고구려인의 기상과 신라조의 연정도 만났고 장터 서민들의 애환에 푹 빠지기도 하였다.
책은 나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반려자이자 기쁨의 원천이었다. 가난과 추위로 떨면서도 나의 조그마한 다락방에서 릴케도 만나고 버지니아 울프도 만나곤 하였다. 모호하고 황폐한 나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불안의 벽에 갇혀 내일을 부정할 때에도 나는 차가운 다락방에 쪼그리고 앉아 외로운 들고양이처럼 이불 두르고 앉아서 불안의 벽을 뚫고 황폐한 내면세계에 비옥한 물기를 주곤 하였다. 책을 통하여 순수한 영혼과의 교감을 통하여.
그 시절에는 그저 몇 권의 책만으로도 풍요롭고 순수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 보라. 정말 질릴 정도로 수많은 책들이 서가에 빽빽이 꽂혀 있다. 그래서 사서의 도움이 필요하고 도서실 활용 수업이 시급하고, 대니 힐리스가 만들려고 하는 개인용 맞춤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하는 책을 골라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 아이들이 읽은 책을 충분히 사색하고 느끼고 토론하도록 안내하는 프로그램, 아름다운 영혼과 교감할 수 있고 잠재된 인식능력에 불꽃을 붙여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어서 발명되기를 고대해 본다.
아니, 그런 선생님을 어서 만나고 싶다. 이제 학교 도서실은 아이들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여 그 아이의 수준과 욕구에 맞는 책을 소개해 주고 함께 토론하고 잠재된 인식욕구에 불을 붙여주는 그런 사서교사, 그런 수업을 할 수 있는 교과교사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제 도서실은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지적 유희를 즐기도록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김현옥.수원 수일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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