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님은 백하고도 한 살 잡수신 상노인(上老人) 이시다. 특별히 아프신데도 없고 자식들이 둘러앉아 흥을 돋우면 좋다고 손뼉도 치신다.
그러나 매주 가뵐 때마다 어머님의 기력은 한계를 느끼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젠 입고 싶으신 옷도, 잡숫고 싶은 음식도 없단다. 그 좋아하시던 화투놀이를 하자고 화투장을 손에 쥐어 드리면 손에서 흘러내리고 걷지도 못하시고 용변도 도와드려야 하는 정도까지 왔다.
그야말로 노인 아기가 된 것이다. 내 가슴에 안기어 힘든 숨을 쉬고있는 어머님을 보고 있노라면 만가지 후회가 곧 눈물비로 바뀐다. 한번이라도 더 좋은 옷 해드리고, 맛있는 음식 대접해 드리고, 관광도 모시고 다닐걸…. 이제는 해드릴래야 해드릴 수 없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효자 구오자(丘吾子)의 글이 생각난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질 않고(樹欲靜而 風不停)/ 자녀들은 보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구나.(子欲養而 親不待)//가면 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요(去而不來者 年也)/가시면 다시 뵐수 없는 분이 부모님 이로구나.(不可再見者 親也)//
어머니는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두셨고, 나는 막내 아들이다. 어머니 집에 가면 나는 단둘이 잠을 자곤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어머니는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 하던 이야기며 자식을 낳아 기르던 일 등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이런 저런 내막을 말씀하시곤 했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는 50여년전과 똑같은 인사를 한다.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어머니를 안고 뽀뽀를 하면, 어머니는 “늙은이가 뭐가 좋다고 그래” 하시면서도 마냥 흐뭇해 하신다.
하나님께서 만약 나보고 단 하나의 소원만을 말하라 하면 “저와 제 모친과의 이 소박한 행복을 오래가도록 해주시고, 하늘나라에서도 또 함께하게 해주옵소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효(孝)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효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무 조건없는 그 고귀한 사랑과 희생에 대해 이제는 우리가 아무 조건없는 사랑과 공경(恭敬)으로 그동안 받은 것들을 되돌려 드리는 것, 이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마음과 행동이 아니겠는가.
/서일성 경민대학 효실천본부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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