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뜨악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영정(影幀)이란 게 죽은 이의 장례식장 빈소에 안치하는 고인의 사진이 아닌가, 원래 화상을 그린 족자와 영상의 두가지 뜻이 있다. 사진문화가 도입되기 전의 옛날에는 아마 고인의 얼굴을 더러는 그림으로 그려 안치했던 게 영상으로 바뀌게 되어 ‘영정사진’이라는 합성어가 나오게 된 것 같다.
어떻든 수원시내 사진작가 모임과의 제휴로 노인 분들에 대한 영정사진 무료촬영을 시작할 땐 좀 그랬었다. 자신이 죽은 다음에 쓸 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게 그리 기분좋게 여길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기우였다. 본회 제2사무실로도 사용하는 만석공원앞 경로급식소에서 무료촬영을 시작한 당초엔 100여명을 예정했던 것이 계획을 바꾸어 사흘동안에 300여명을 감당해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일 찾아들어 줄을 서며 차례를 기다리는 노인 분들을 차마 그대로 돌려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정사진은 상체만 나오는 것이지만 곱게 단장한 정장차림인 것은 자신이 찍힐 영정사진에 쏟는 정성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로 미리 찍어두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어 그렇겠지만 사후 관심인 인간 본연의 정서로 해석되기도 한다.
무료 촬영을 이렇게 끝내고 두어달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사진이 아직도 덜 됐느냐며 찾으러 온 분들도 적잖았다. 이윽고 자동차로 싣고온 영정사진은 무더기 무더기였다. 그냥 사진만 찍은 줄 알았는데 25㎝×30㎝ 크기의 사진을 예쁜 액자까지 마련하여 그 속에 넣어왔으므로 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만이 아니다. 시일이 걸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사진만 덜렁 인화한 게 아니다. 눈썹이며 머리, 수염이 있으면 또 수염을, 그리고 얼굴 군데 군데를 가필하거나 수정하여 컴퓨터처리 하는 덴 작품마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영정사진 무료촬영 봉사는 단순히 사진을 찍어준 것이 아니라 일일이 작품화하여 증정한 것이다.
여기에다 갖가지 컬러의 예쁜 액자에 담음으로써 생전에는 벽에 걸어 두어도 되는 일상의 대형 사진으로 역시 손색이 없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것이었다. 영정사진을 찾아가는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할아버지 남편은 할머니 아내의 사진을, 할머니 아내는 남편 할아버지의 사진을 자신의 영정사진은 제쳐둔 채 꼬옥 껴안는 것은 실로 값진 노년의 사랑 나눔으로 보이곤 하였다. 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홀로 영정사진을 찾아 가면서는 주름 진 손으로 쓰다듬으며 볼에 부비곤 하는 것을 볼 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이런데도 작가 모임은 되레 미안하다고 했다. 그동안 두 분의 노인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 분들 생전에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 순박함이 무척 돋보인다. 도대체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 것인 지, 아마 영정사진마다 5만원으로 쳐도 족히 1천500만원은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협회장은 이름조차 밝히기를 거부했다. “회원들의 한결같은 정성이 지 회장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 이 작가들 모임은 ‘대한프로사진작가협회 수원시지부’다. 회원들마다 낮엔 앨범 작품 등 생업에 힘쓰면서 밤으로 돌아가며 이 많은 영정사진 작업을 자원봉사한 것이다.
/이지현 (사)한길봉사회경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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