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인간 이산(李示示)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분은 세종과 정조이다. 특히 정조는 문예부흥을 일으킨 임금으로 추앙되고 있다.

우리가 정조를 회상할 때 의젓하고 웃음 띤 모습만 기억한다. 그렇다면 인간 정조는 어떠한가?

1752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아들이 태어난다. 그 이름 이산. 1759년 7살이 된 그는 왕세손이 되어 세상의 눈길을 한몸에 받는다. 그런 이산에게 3년후 청천벽력의 가시덤불이 심장을 찌른다.

이름하여 임오화변. 1762년 5월 화창한 봄날, 할아버지인 영조의 명에 의해 28살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감금된 채 굶겨죽임을 당한다. 이때 열 살박이였던 이산은 훗날 이렇게 술회한다.

“가슴에 사무친 슬픔을 죽도록 간직한 채, 평생을 돌아갈 곳 없는 곤궁한 사람으로 살았다”고.

세손 이산은 정치적 반대세력이 심어놓은 내시와 종들의 감시를 받는다. 밤낮으로 염탐당하고, 몇 달씩 옷을 벗지 못한 채 잠을 자야 했다. 임금이 된 후에도 대궐에 침입한 자객에 의해 시해당할 뻔한 위험에 처한다. 재위 24년간 일곱 차례의 역모를 겪는다.

아버지 사도세자 능을 방문할 때의 기록을 보자.

재위 13년 7월. 청량리에 있던 아버지 무덤 ‘영우원’을 수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의 모습. ‘사초(莎草)를 부여잡고 울부짖으며 가슴치기를 오랫동안 하여 구토증세를 보였다’

재위 18년 1월 수원 ‘현륭원’ 행차모습. ‘슬픔을 억제치 못해 옥체를 땅바닥에 던지고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손으로 잔디와 흙을 움켜잡아 뜯다가 손톱이 상했으며 정신을 잃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인간적, 정치적 시련을 극복한 인간 이산에게 역사는 평한다. ‘왕조중흥의 꽃을 만개시킨 성군. 르네상스를 일궈낸 군주. 위민정책과 통합의 정치로 국가부흥을 이끈 정조대왕’이라고.

오늘날은 불확실성의 시대, 신뢰가 부족한 시대이다. 생명이 생명을 적으로만 여기는 섬뜩한 동물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人間事의 무게가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오늘 밤 홀로 책상에 앉아 역사책을 펴십시오.

/송기출 수원청소년문화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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