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폭염과 모진 장마를 딛고 선 가녀린 벼이삭이 웃는다. 그러나 곧 겨울은 온다. 존재의 모든 껍데기를 벗어야 할 겨울이 온다.
모리 교수의 ‘살아있는 장례식’을 보면서 삶의 불꽃같은 열정과 정갈한 마무리에 숙연해진다. 역사속에서 사람노릇을 멋지게 해낸 율곡선생의 삶을 더듬어 보자. 퇴계와 더불어 성리학의 완성자라 칭송되는 율곡. 그는 과거의 예비시험인 생원과, 진사과 그리고 본 시험인 대과에서 치르는 각각 3번씩의 시험에서 모두 1등으로 장원급제한다. 이를 9장장원이라 하는데, 과거제도 역사상 단 2명뿐인 기록이다.
율곡과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이름 師任堂 申氏. 그녀는 율곡의 어머니, 작가, 화가이며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율곡은 파주생이지만 어머니 고향인 강릉에서 성장했다. 뛰어난 재질을 구비한 사임당 신씨의 교육이 있었기에 율곡이 존재한다. 그는 어머니가 사망하자 크게 상심하여 19세에 금강산에 입산하여 중이 된다. 그러나 1년여 수행 후 환속, 성리학에 전념한다. 이때 퇴계 이황으로부터 ‘후배가 두렵다(後生可畏)’는 평가를 받는다.
성리학의 대가 율곡. 그가 지극한 나이에 어머니 생신날에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대상은 당연히 신사임당이며 신씨라면 의당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때때옷의 효도춤을 받은 이는 신사임당이 아닌 새엄마였다. 새엄마는 술도 잘 마시고 성격도 드세 주변에서 악평을 들었다. 그럼에도 율곡은 새엄마를 친어머니처럼 모셨다. 부친이 별세한 후에도 끝까지 자식도리를 다했다. 율곡이 돌아가셨을때 새엄마는 ‘이런 자식을 만난 덕에 내가 사람이 되었다’며 3년동안 상복을 입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정도면 제대로 된 사람노릇 아닌가!
공자의 ‘춘추(春秋)’는 혼란을 평정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책이다. 방법은 君君 臣臣, 父父 子子다. 각자의 존재는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노릇은 상대방의 자격됨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인격됨의 문제다.
하늘에는 구름의 흩어짐과 모아짐이 너그럽다. 大地에는 천둥과 비바람을 이겨낸 곡식이 풍요롭다. 율곡선생이 저만치서 웃는다.
/송기출 수원청소년문화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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