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립대학의 편법 고교등급제를 통한 학생 선발이 사회적 관심이 되고 있다. 관계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다는 명분으로, 그 반대편에서는 차별적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대학이든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우수한 학생을 입학시켜 정상적인 교육을 시키면 취업률을 높일 수 있고, 학교의 사회적 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다 부딪치는 문제들, 예컨대 표준화된 의견을 정답인 것처럼 여긴다든지, 토론식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등의 문제들은 고등교육의 정상화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반면에, 고교등급제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학진학이 학생 개인의 능력이 아닌 학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여러 가지 폐해가 있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성적이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고, 늘어가는 신설 학교는 점수를 받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사교육이 활성화된 지역의 고교가 혜택을 입는 것은 결국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녀들의 장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목표가 대학진학, 그것도 학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주로 취업이 잘 되는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으로 변질되었고, 과도한 사교육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고교평준화 정책이 결국 질적으로 하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정책도 질적 수준의 향상보다는 양적 성장에 초점을 두어온 것은 분명하다. 대학설립의 기회와 입학정원의 확대 등을 통해 1990년 33.2%였던 고등교육 진학률이 2004년에는 무려 81.3%로 급격하게 확대되어, 학업능력과는 관계없이 원하기만 하면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대학의 학생 선발권 자유화나 3불 정책(고교등급제, 논술고사 외 필답고사, 기여 입학제 금지)의 폐지 등이 제시되지만, 대학입시와 관련된 여러 교육적 처방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을 법하다고 본다. 즉 자녀의 능력과 적성을 무시하고 모두가 일류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어 하는 기성세대들의 희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일단 좋은 대학에 입학을 하면 대충 공부를 해도 졸업장을 받고,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에 의해 좋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기성세대 자신들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이 풍요로움을 생산한 세대이지만, 자녀들은 소비하는 세대임을 알아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이 가졌던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나 열의와 진지함도 현재 세대들에게는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사회가 발전할수록 고등교육 진학률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직업을 찾고 사회적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최저 생계를 국가에서 어느 정도 보장하기 때문에 굳이 어려운 학문의 길에 들어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도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의 문제를 대학입시와 동일시하거나, 교육적 처방만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기에는 부족하다. 학력이나 좋은 직장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나 성취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가 보장되는 사회구조로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부터 자녀들의 대학진학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어야 하고, 교육문제를 사회구조와 제도와 함께 고려하여 접근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 국민이 세 다리만 건너면 누구나 수험생과 연결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입시철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난리를 없앨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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