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박동조율기(Pacemaker)

사람 심장의 수축활동은 심장 속에 있는 자극전도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극전도계가 활동하고 있는 한, 심장은 자율신경의 지배가 끊기더라도 자동적으로 규칙적인 수축운동을 계속한다. 이것이 박동조율기(pacemaker)의 역할이다. 심장병 중에 부정맥은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증상으로, 방실결절을 중심으로 한 전기 신호 발생 및 전달체계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인조 박동조율기를 몸에 넣어주어 너무 느리거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 준다.

지난 봄 제주도에서 개교 50 주년 기념 교수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등산이나 관광을 하였는데 나는 관광팀을 따라 ‘몽골 말몰이 쇼’를 관람하였다. 칭기즈칸의 후예라고 하는 몽골인의 말몰이 기술과 제주 조랑말의 강인함을 보이려는 제주도민의 합작 관광상품이었다.

지름이 30m는 되어 보이는 원형극장에서 여덟 명의 젊은 기수들이 갖가지 묘기를 부렸다. 말등에 눕기도 하고, 뒤를 보고 말에 앉아 달리기도 하고, 말을 탄 채로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기도 하였다. 극장 중앙에 지름이 3m 되는 초록색의 원이 있고 그 안에는 수염을 기른 나이든 사내가 채찍을 들고 있었는데, 말이 극장을 한 바퀴 돌 때마다 그도 날카로운 눈초리로 말을 지켜보며 작은 원을 한 바퀴씩 돌고 있었다. 그는 가끔 채찍을 돌려 바닥을 치기도 하였다. 기수가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지만 말의 눈은 그 사내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심장내과 교수에게 말했다. “저 친구가 박동조율기 이군요.” “그래요.”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로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바라는 최고기록시간에 따라, 각 구간별(1Km, 5Km 단위)로 그 기록을 낼 수 있는 속도를 정해서 맞추어 달리고는 완주는 못한 채 기권하는 선수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영광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우승 후보 동료들의 기록경신을 위하여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교직에 몸담아 후학들을 가르친 지 13년째 되었다. 젊음의 패기로 늘 앞장서서 달려가며 화려한 조명을 받아왔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영광 뒤에는 채찍을 들고 말을 주시하는 박동조율기 같은 원로교수님의 노고가 있었음을 잊고 있었다.

몇 년 후 원로교수님이 은퇴하시면 내가 채찍을 잡고 그 원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 전에 나는 말의 눈을 주시하는 그 매서운 눈매를 배워야만 한다. 나는 제자들을 키우며 늙어갈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엔 그 채찍을 제자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황건 인하대병원 성형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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