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마음의 물구나무서기

나는 종종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혈액순환에 좋고 오장육부가 튼튼해진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자세를 보자. 두 다리는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고 단단한 두 팔은 온 힘을 다해 지구를 들고 있는 형상이다. 잠시동안이지만 나는 세상사람들과 정반대로 서있다.

내가 물구나무를 서는 진정한 이유는 어떠한 명제에도 구애받지 않고 나를 내 안에 가두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균형감각! 일선에서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사람들이나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에게는 꼭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보호관찰소에 오는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비행이 습성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어떤 부모는 자녀의 상습적인 가출과 절도행위를 견디다 못해 고아원에 위탁한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부모는 일상이 되어버린 빈곤에 허덕이며 자녀에 대한 양육의지를 아예 상실해 버리기도 한다. 학교 부적응으로 자퇴한 대상자를 복학 주선코자 보호관찰 직원이 학교에 방문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미칠 악영향과 학부모들로부터의 거센 항의를 이유로 대상자의 복학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소년원과 교도소가 괜히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에 있어봤자 피해만 주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물론 소년원이나 교도소는 그 존재만으로도 범죄억제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유를 박탈당해본 후에야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가정에서 포기하고 학교에서 거부당하고 결국 수용시설에 보내진 청소년이 과연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 낙인이란 무섭다.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그들의 미래는 암담하다. 그들을 문제아로 낙인찍기 전, 단 한번이라도 마음의 물구나무를 서보자. 절망과 고독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그 청소년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사랑받기를 원했으며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과 기회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재범이라는 위험이 항상 따라다니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기회를 주고 있는가? 오히려 문제 청소년이라는 편견과 낙인 속에 차가운 시선과 질책만을 주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모두가 마음의 물구나무서기가 필요한 때이다.

/김종호 수원보호관찰소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