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자폐아인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동안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겪어왔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많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과연 초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 참 많은 도움을 받아 왔구나”라는 생각 끝에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면해보려는 생각에서 “과연 내 아이만 도움을 받아 왔을까. 내 아이로 인해서 다른 아이들이 도움을 받은 것은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장애학생과 같이 공부하면서 비 장애학생들도 자기보다 약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도와야하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야할 사회는 잘생기고 못생긴 친구가, 공부 잘하는 친구와 못하는 친구가, 얼굴이 흰 친구와 검은 친구가 모두 함께 어울려서 사는 사회라는 인생의 값진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부모인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인생에 대하여 자신 만만하던 총각 시절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다닐 만큼 자존심으로 꽉 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사고를 치고 다니는 작은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다니면서 처음에는 일단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 고개 숙이고, 사과하고…. 그 때마다 속으로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면서 자식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도둑질도 자꾸 하면 버릇이 된다고 했던가. 한 번 두 번 머리를 숙이는 것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총각 때 보다는 지금의 내 모습이 좀 더 사람과 어울려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면 이건 결국 장애를 가진 작은 아이가 아버지인 나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기 위해서 따라 다니면서 배운 수영을 통해 내 건강을 지키고 있는 것도,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동산에 가서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롤러코스트를 내일 모레면 나이 오십인 이 나이에 같이 즐길 수 있는 것도 모두가 작은 아이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보니 불교 어느 경전에 나온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금 현재 이곳이 천당일 수도, 지옥일 수도 있으리라.
/노석원 한국장애인부모회 수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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