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그에 대한 비난과 책임

2004년 여름은 희대의 엽기적 연쇄살인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였다.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살인이 서울 도심에서 20여차례 반복되면서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유영철의 살인행각이 드러났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범행의 방법·과정 등 범행의 결과적 상황에 주로 관심을 가졌으며, 범행의 원인과 동기도 지극히 개인의 과거 불우한 환경에서만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충격과 분노, 비난 속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하나는 유영철이 고교 2학년 이후 소년원과 교도소를 오가며 십수년 동안 국가 형벌제도의 통제를 받았음에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사회성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이 사건이 우발적으로 터진 것이 아니라, 범죄전력이 많은 사람에 의해 몇개월에 걸쳐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었음에도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년원과 교도소를 나온 뒤에도 범법자에 대한 국가적 관리시스템인 보호관찰제도에 의해 관리되었더라면 사회 안에서 사회 적응력을 함양하면서 반사회성을 줄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정 기간의 지도·감독을 통해 그의 일상적 행동을 점검함으로써 이상기류를 조기에 감지해 연쇄살인을 방지할 수도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아쉬움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한해였다.

2004년 12월, 1심재판에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므로(현재 항소중) 그에 대한 비난은 법적 절차에 의해 매듭지어 질 것이지만 제2, 제3의 유영철을 만들지 않을 책임 또한 우리에게 남겨진 2005년도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소년원·교도소 등 시설내 처우와 함께 사회 적응력 향상과 사회 내에서의 재범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보호관찰 등 사회내 처우 제도하에 비행청소년과 범법자가 더욱더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즉 유씨가 흉악범에 이르기 전에 또는 구금시설 석방 뒤 주거지의 수시 방문점검과 정기 면담 등을 통해 생활을 파악하고, 성폭력 치료·정신심리치료 프로그램의 참여로 폭력성을 완화시키고,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장애인·독거노인 등을 위한 사회봉사 기회를 가졌더라면, 이처럼 흉포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으며, 이제는 그에 대한 비난보다는 그와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태 원 의정부 보호관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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