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신보도에 빌 게이츠가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고 자식들에게는 1000만달러씩만 주겠다는 내용이 실려 화제가 되었다. 한술 더 떠 주식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그의 전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런 미담들이야말로 자본주의를 활짝 피워낸 미국사회의 진정한 저력이다. 개인이 노력해서 엄청난 부를 이루어 냈더라도, 열매는 다시 사회로 되돌리고자 하는 청교도적 양심의 발로이다. 그래서 미국사회에서 부자는 최고로 존경받는 대상이 되어 왔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존경받는 부자가 거의 없다. 미국의 몇십배가 넘는 유구한 우리 역사에 비교하면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비단 존경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받을 마음마저 생기지 않는다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 어둡기만 하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왜 미국처럼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할까. 사촌이 땅을 사기만 해도 배가 아파진다는 우리의 비뚤어진 심사때문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멀리 찾아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의 효시인 간송미술관을 세운 전형필 선생은 엄청난 재산을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에 쾌척하였다. 그의 수집비사를 보면 우리 미술품을 놓고 일본인과 경합을 벌이기 여러 차례였고, 한 번에 지금의 아파트 여러채 값으로 귀한 문화재를 계속 사들이곤 하였다. 간송미술관(서울 성북동 소재)에는 그렇게 해서 수집된 국보 보물이 수두룩하다. 간송 생존시에 그렇게 사들인 문화재를 되팔았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오늘의 삼성가를 있게 한 이병철회장이나 여러 수집가들도 규모의 대소는 있을지 모르나, 나름대로 소신과 명분을 갖고 문화재를 수집하고 이를 지키는 데 열성을 바쳤다. 이들의 공통점은 만약 이를 되팔았다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두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수집에만 전념하는 아름다운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골동상과 박물관, 혹은 상업화랑과 미술관의 차이는 수집한 문화재나 미술품을 되팔아 이익을 냈느냐 아니냐에 있다. 투자후 이익회수냐 아니냐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문화재를 향한 ‘일편단심-투자’만으로 일관한 간송이나 호암 등의 에피소드와는 달리, 일부 몰지각한 졸부들이나 80년대 복부인들 중에는 문화재나 미술품을 투기의 수단으로 삼아 이익을 본 사람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애호가가 아니라 투기꾼이었다. 물론 이런 기류에 편승해서 불로소득을 올린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르나, 속칭 막차를 타거나 가짜에 재산을 헌납한 경우 또한 적지 않았다.
문화재나 미술품은 조건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더더욱 투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부자가 없다는 사실은 간송이나 호암처럼 조건없이 자기의 재산을 던져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문화나 복지의 혜택’을 늘리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적 이익이나 업적을 오로지 개인을 위해서만 누리고자 할 때, 이들을 존경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직계가족에게 몰래 물려주거나 이해집단에 귀속시키고자 하는 노림수나, 엄청난 차익만을 노리는 투기성 재산운용을 덮을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 빈축을 사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니 존경이 생길 리가 없다.
전국토가 부동산투기의 마당이 되어가고 있고, 전국민이 재테크에 몰두하고 있는 이때에 미술품만이라도 그런 광풍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우리문화의 긍지를 지키고 우리미술의 앞날을 밝히기 위해서는 간송같은 아름다운 투자가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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