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무엇을 위한 행정구역 개편 논의인가

갑자기 행정구역 개편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도 야당도 행정구역 개편의 방향에 대해서는 기본 입장이 같다고 한다.

참여 정부에서 행정 구역 개편의 시도는 제주도에서 시도된 바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를 만들어 지역개발을 위한 획기적인 분권을 실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합의가 되었으나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려는 시도가 관철되지 않아 진도를 나가지 못하였다. 시장과 시의원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계 일부에서는 행정구역을 작게 하는 것이 민주행정 이념에 적합하기 때문에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았다.

사실 지금 우리의 도-시, 군 -읍, 면, 동으로 이어지는 행정계층은 조선시대에서 형성된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 당시는 자치보다는 통치에 적합한 구조이었다. 큰 산이 있으면 도의 경계, 강이 있으면 시군의 경계 등과 같이 자연지리를 기준으로 형성되었다. 다양한 지역 개발사업의 추진을 위한 적정한 구역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행정계층과 구역의 설정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우리의 행정구역은 자치를 하기에는 너무 넓고 효율적인 지역개발 정책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좁은 이중성이 있다. 그러나 주민의 일상생활이 진행되고 있는 행정계층을 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대안 하나하나에 문제점과 장점이 상호 대칭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첫째, 경기도를 없애고 31개 시군에서 몇 개씩을 묶어서 예컨대 10개 정도의 광역도시를 만드는 단층제가 주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지방세 체계를 포함하여 기능의 조정문제가 매우 어렵고 지역간 재정력 격차가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광역단위에서 정책을 조정하고 기획하는 기능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리고 이럴 경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직접 통제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권력이 가시화될 우려도 있다.

둘째, 경기도 권역별로 몇 개의 시군을 통합한 광역자치단체를 구성하고 현 시군은 유지하는 방안도 있다. 예컨대 몇 개의 시군을 관할하는 경기 동도, 서도, 남도, 북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광역자치단체가 수행하는 기획과 재정보정의 기능은 약화될 것이다.

셋째, 광역자치단체의 숫자를 늘리는 것에 비례하여 기초자치단체를 세분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경기남도를 구성하면서 안성시를 두 개나 세 개 정도로 세분화하는 것이다.

분권과 자치의 정신에 가장 적합한 대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행정자치 구역이 서구에 비해 너무 넓다는 것을 반영한 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럴 경우 늘어나는 공무원과 행정조직을 감당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는 애로점이 있다.

행정구역은 행정업무의 효율성을 담보하는 장치의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정서적 소속감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의 지명은 그 명칭에서부터 지역적 정체성과 주민의 유대감이 형성되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원칙을 지키는 노력과 원칙에 문제가 있어 이를 보완하는 노력은 구분되어야 한다. 원칙을 설정하고 그것을 운영함에 있어 문제가 있으면 이를 보완 할 수 있으나, 원칙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하여 원칙 자체를 뒤흔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당들이 이러한 행정계층의 개혁을 정치적 숫자의 계산으로 접근할 것을 우려한다. 지금처럼 소선거구제로 되어 있는 경우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 국가의 대표가 아니라 지역의 대표로 활동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중·대선거구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다만 이러한 선거구제 개편을 행정구역 개편의 연장에서 논의하지 말자는 것이다. 매일 시민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정치적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원 희 한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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