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살이가 정말 어렵다. 나라 전체가 너무도 어지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놓고 내 생각을 선뜻 말하기가 주저된다. 긍지로 삼았던 문화예술계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부끄럽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본분을 떠나 세속적 정치적 욕심을 채우려 난리들이기 때문이다. 인정과 이성이 넘치던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장면 1; 조영남은 우리 모두가 아끼는 대중가수로 재주 또한 많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세치 혀끝 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그가 맞아 죽을 각오로 ‘친일(親日)을 하겠다!’ 했을 때, 국민들은 그를 때려 죽이려 하지 않았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기야 하겠느냐여서였다. 그런 그가 일본 신사를 관광차 둘러본게 아니라, 정식 참배라도 한 것처럼 얼버무리자 국민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그의 ‘원론적 친일론’까지도 의심받아 전국민의 불화산같은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노래도 잘하지만 입담도 좋아 명사회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잘난(?) 입에서 뱉어낸 말 몇마디로 급전직하,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연예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결과이다.
장면 2; 남북화해의 마당-평양축전, 2005-에서 현 정부의 문화계 고위공직자인 유홍준문화재청장이 북한 인민군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동기가 무엇이든간에 언론에 알려지자마자 엄청난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당사자는 남북간에 생긴 틈에 화해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했지만, 아직도 북쪽을 붉은 색으로 느끼는 많은 ‘전쟁피해-국민’의 눈에는 마냥 헷갈리는 장면으로 비쳐졌다.
그는 대통령에게 정조대왕식의 정치를 권유하거나, 광화문 현판의 집자복원 시도 등으로 여론의 파고를 높이며 항상 시중여론의 중심에 서있었다. 우리 문화를 알리면서 여론몰이의 덕을 크게 입었던 그로서는 노래 때문에 여론의 치명타를 입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생각보다 말이 한참 앞서간 후유증이다.
장면 3;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조국땅을 뒤로 하면서 울부짖은 어느 미망인의 피맺힌 절규가 많은 국민들 가슴에 아프게 각인되어 있다. 전쟁직전 상황까지 갔던 서해교전에서 바로 북한군의 도발행위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해군중사 부인의 호소이었다. 조국을 위해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남편을 애도하는 것마저 차단되었다는 고백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단호하게 ‘세상에 무슨 이런 나라가 있나!’ 하면서 조국을 원망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이민을 떠나 버렸다. ‘남북화해와 협력’이라는 정치에 휘말려 개인의 생명과 권리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순간이다. 이래 가지고야 누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정치가 국민을 버리는 순간이다.
장면 4; 장면 3위로 겹쳐지는 아비규환의 장면은 소위 IT신세대가 병영에서 벌인 엄청난 살육사건이다. 어떤 이유가 그를 냉혹한 살인마로 몰았는지는 몰라도, 조국을 지키라고 내준 수류탄과 총으로 잠에 곯아 떨어진 동료와 상급자를 사냥감처런 마구 살육해도 좋단 말인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성찰이 없어서 생긴 일이어서 걱정스럽다.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내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더 우선시되고, 도덕적 판단보다 ‘힘의 논리’가 더 앞서는 세상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혼란마저 생긴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모르는 국민은 단 한사람도 없다. 다만 행동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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