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속개될 예정이었던 북한 핵문제를 풀기위한 6자회담이 지연되고 있다.
이러다가 북한이 핵실험과 같은 극단적 행동이라도 하고 미국이 이에 맞서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감행하면 또 다시 한반도가 전쟁 위기를 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이미 우리는 11년 전 봄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뻔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솥뚜껑이 아니라 부엌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하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회담의 속개가 지연되는 가장 큰 표면적 이유는 북한의 핵 평화 이용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이 다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라 한다. 북한은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는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 아래서 모든 주권국가들에게 부여된 권리이며 북한 역시 이 보편적 권리를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과거에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이 평화적 권리를 남용했었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전과자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나서서 북한에게도 주권국가로서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를 인정하지만 먼저 북한이 현재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중재안을 내놓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북한이 스스로 전과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닭이 먼저인가 닭의 알이 먼저인가라는 논쟁과 비슷하다. 중국의 수석대표인 우다위이 외교부 부부장이 급히 평양으로 날아갔으니까 좀 더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결과를 낙관적으로 보기는 아직은 이르다.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것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표면적 이유 뒤에 보다 실질적 문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 숨어있는 그림이 바로 경수로이다.
북한의 신포지구에는 1994년에 타결된 제네바 합의에 따라서 2기의 경수로가 건설 중이었다. 약 40억 달러를 투입해서 2백만㎾ 짜리 경수로 원전 발전소 2개를 짓고 있다가 3년 전에 이른바 고농축우라늄 사건이 터지면서 건설이 중단되었고 계획 자체가 백지화된 바 있다. 북한은 이 경수로 발전소가 완공되어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2백만㎾ 전력을 합치면 모두 4백만㎾의 전력을 북한은 가지겠다는 주장인 셈이다. 북한이 실제로 1년 동안 생산하는 전력 전체와 맞먹는 규모이다. 물론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전력도 갖게되고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도 확보하게 돼서 일거양득이 된다.
경수로를 통해 핵 무기를 만드는 것이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이용하다가도 언젠가는 군사목적으로 전용할 수도 있으니까 이거 삼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비용이 엄청나다. 경수로 건설을 마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이 더 들어가야 한다. 현 시세로 따져 3조에 가까운 돈이다. 2백만㎾ 전력 제공이 경수로 계획의 취소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문제이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경수로의 완공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지금 북한이 해야할 일은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경수로 문제는 신뢰가 회복되면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여 손상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한 다음에는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당연히 주어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북한이 합의한 대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행하고 한민족 전체의 공동 평화와 번영을 구현시켜야 한다.
/정 종 욱
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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