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첨단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되어 가는 가운데 오늘의 현대인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중요한 통과의례이다.
해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고향을 찾는 차량행렬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될 만큼 빽빽이 줄지어 선 광경은 유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우리 민족정신의 일면을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귀성 인파로 인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생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향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향수를 안고 있는 사람마다 그 만큼의 애수가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추석은 돌아가신 조상님과 부모님께 성묘를 하는 것 자체에 부여 된 의미보다는 떨어져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체 의식 속에서 공통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성묘’는 죽은자와 남은자의 관계 속에서 죽은자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죽음을 기념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고 비일상적인 것을 일상 속으로 끌어내어 산자와 죽은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고대로 내려오는 한국인의 ‘축제’라고 할 만 하다.
그리고 언제나 축제의 한가운데는 풍족한 음식이 있고 추석의 중심에는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축제의 요리가 있다. 누구든지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음식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기억의 촉수를 자극하곤 한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정성스럽게 송편을 만들어 솔잎을 깔고 송편을 찌는 사이 그동안 떨어져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는 가족들의 넉넉한 웃음으로 익어가는 풍경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언제 꺼내보아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추석을 축제로 보지 않고 현대 여성들 대부분 값싼 노동으로 치부하며 ‘명절 증후군’으로 낙인 찍고 있는 실정이다. 차례 음식 장만에 손님 상 차리기, 쉴새 없는 설거지 등 단조로운 노동 때문에 명절만 지나면 온 몸이 파김치가 된다고 토로하며 명절이 돌아오는 것이 ‘악몽’이라고 할 정도로 명절의 가치가 상실되고 있다. 이는 현대 여성들이 자식들에게 축제를 위하여 요리를 하는 아름다운 어머니의 향수를 보잘 것 없는 육체적 노동으로 탈바꿈시켜 버림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묻어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한편 일부 여성학자들은 명절이 여성에게만 지워진 짐이란 문제제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할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명절은 점차 해체돼 가는 가족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며 서로에게 고통스러운 존재일 수 있지만 필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절을 통하여 혈연관계를 회복하고 견고하게 하는 좋은 기회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강화시킨 가부장제 전통으로 명절 전개방식이 장남 중심의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형식으로 흐르고 있고, 명절에 참여하는 여성들끼리도 큰며느리 등 특정 구성원에게 명절 부담이 고스란히 떨어진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핵가족화 되면서 명절관습 자체에 대한 성찰이 없다가 보니, 조상에 대한 감사의 본질은 빠져 나가고 장손, 장손 며느리의 역할만 남게 됨으로써 ‘인간’은 없고 ‘노동’만 남게 된 셈이다.
따라서 추석을 축제로 보내려면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지만 일 조차도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혼자 하는 것’에서 무엇이든 ‘함께 나누는 것’으로 인식의 전환과 실천이 필요로 할 때가 아닌지. 이번 짧은 추석 연휴에도 설레임으로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귀향 행렬이 귀환 할 때 ‘함께 나누는 것’으로 축제를 보낸 사람들의 풍요로운 웃음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 성 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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