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TV에는 드라마가 너무 많다. 한 방송사가 하루에 내보내는 드라마가 최소 세 편 이상이나 된다. 아침 일일드라마를 비롯 저녁 드라마는 기본이고 특정 요일 드라마에다가 특집 드라마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가히 ‘드라마 왕국’ 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문제는 드라마의 수도 수지만 개별성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그 드라마가 그 드라마다. 애정물은 약속이나 한 듯 삼각 관계가 아니면 불륜 일색이다. 사극물 역시 각 방송사의 것이 비슷하다. 여기에 질이나 높으면 그런 대로 괜찮겠는데 질까지 떨어진다.
가족이 함께 보기 민망한 장면은 물론 어린이가 볼까 두려운 장면과 대사가 예사로 나온다. 노소의 구분도 없고 남녀의 구별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모두가 저 잘났다고 하는 볼썽사나운 드라마가 매일 안방을 휩쓸고 다닌다.
아침 드라마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대에 걸맞게 희망찬 드라마라야 한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 역시도 삼각 관계 일색이 아니면 불륜으로 얼룩진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는 하루를 희망차게 열어가야 할 시간대에 있는 시청자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지극히 불량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저녁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대는 온 가족이 저녁상을 물리고 앉아 하루의 피로를 푸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함께 보기 민망한 드라마라면 이는 적절한 드라마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드라마는 심야 시간대에 편성해야 마땅하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12월 1일부터 평일 낮 방송을 시작하여 이런 우려는 더욱 깊어졌다. “시청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공익성을 강조했지만 공개된 편성표에는 드라마 등 인기 프로그램의 재방송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지상파 TV의 낮 방송을 허용한 뒤 케이블 업계 등이 “평일 낮 방송은 결국 재탕 삼탕 편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 그대로 적중한 꼴이다. 방송사가 드라마에 치중하는 것은 오로지 시청률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 어떤 프로보다도 재미란 면에서 앞줄에 놓인다. 시청자의 감정을 통째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이 드라마의 특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드라마에 목을 맨다.
게다가 한심한 것은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가 좀 인기 있다 싶으면 그와 유사한 드라마를 제작하여 경쟁에 나서는 것이다.
일부 장사꾼들의 하는 짓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드라마의 시청률이 일단 높다 하면 엿가락 늘리듯 늘리는 법도 방송사가 개발한 아이디어중의 하나다. 여기에 시청자의 의견까지 얹혀지다 보니 일찌감치 죽었어야 할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방송은 그 무엇에 앞서 국민의 건강한 정신 문화를 생각해야 한다. 인기도 중요하고 시청률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기(公器)로서의 사명감이다. 건전한 사회규범을 선도하진 못할 망정 국민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이런 류의 상업성 프로에 방송사들이 혈안이 된 듯한 모습을 보는 일은 심히 불쾌하다.
차제에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드라마의 책임감과 함께 도덕성이라 하겠다. 제아무리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때리는 장면 같은 부도덕한 행위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튀는 것에도 높이가 있고 선이 있다는 것을 제작자는 알아야 한다.
드라마는 방송의 노른자위이다. 그런 만큼 책무도 크다. 날로 심화돼 가는 정신문화의 쇠락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다면 드라마야말로 오락성을 유지하되 건강하고 유익한 사회 건설에도 일익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마땅하다.
/윤 수 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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