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애장품의 값어치

몇해 전 필자의 남편 학창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돌아가시어 같이 문상을 간 일이 있었다. 졸업한 지 삼십년이 지나 강산이 세번이나 변했다는 세월이 흘렀건만 옛 스승의 마지막 길을 보러 그 옛날의 까까머리 제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일줄은 몰랐다.

화두는 자연히 고인이 되신 옛 스승의 추억이었는데 이구동성으로 제자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는 두가지가 지금도 크게 마음에 와 닿고 이것이 교육의 힘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중 하나는 한글 전용 시절이었던 그 시절 선생님께서 당신의 수업시간 틈틈이 시간을 할애해 제자들의 장래 사회생활을 위해 한자 교육을 시키신 점이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싫어 했다는데 이제 돌이켜 보니 신문에 나오는 한자도 읽을 수 있고, 한자 쓰는 획 순서라도 알게 된 게 모두 그분 덕이었다고 모든 제자들이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또 하나는 벌통 얘기인데 국어 선생님이셨다는 분이 제자들 경제교육도 제대로 시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문계 고교 졸업생은 대학 진학이 최우선인데 가정형편상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도 많은 시절이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부업 겸 취미 생활로 지금의 법원사거리 근처에서 원예와 꿀벌을 키우셨는데 진학하지 못한 제자중 양봉에 관심이 있는 제자가 벌통 분양을 원하면 우리 생각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제자이고 하니 시중가격보다 싸게 분양하시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꼭 제 값을 다 받으셨다.

헐값에 분양하면 정성을 다해 키우지 않아 결국 양봉에 실패한다고 하시며 튼튼한 벌통을 꼭 제값을 제자들에게 받으셨단다. 문상을 가 들은 얘기였지만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노력 없이 값 없이 쉽게 얻어 진 것에 우리는 얼마나 애착을 갖거나 관심을 갖는지 생각해 본다. ‘Easy come, easy go’란 말이 있듯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 지는 것에 정당한 값을 치루며 소장하고 감상하고 느끼는 생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의식주 해결로만으로 사람답게 산다고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각종 공연과 경기 관람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볼 때 더 박진감 있고 더 냉정한 비판도 할 수 있다. 평소 잘 아는 화가분에게 생일 선물로 그분의 정성이 담긴 그림 한 점을 받더라도 액자 값을 드려 우리 정신 세계 풍요를 위해 그분의 온 시간과 영혼을 불태우신 정성에 감사드리는 독자분들이 되시길 바란다.

/최 수 아 아트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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