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아직도 우리에게 친숙하게 들린다. 그러나 7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산업은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산업구조가 급속히 탈바꿈됐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는 정부의 수출지상주의정책에 따라 조선이나 자동차, 핸드폰, 반도체, 가전제품 등을 세계시장에 팔아왔고, 우리 상품을 수입한 국가는 자국 상품 수입에 대한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자국 농산물 수입을 끈질기게 요구한 바 있다. 산업자원부 새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량은 2천847억달러를 초과했고 수입량 또한 2천611억달러에 이르고 있어 수출입량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 경제규모는 세계 12위에 해당된다. 경제규모가 큰 것에 비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무 또한 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자유무역 실현을 위한 각종 통상압력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쌀 22만여t 의무 수입과 점진적인 농산물시장 개방을 골자로 하는 WTO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등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고 시장 개방에 따른 준비가 덜 된 우리 농업 경쟁력은 쌀시장이 개방되면 도산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농민들은 쌀시장 개방에 대한 국회 비준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 등을 아주 애처롭게 생각하고 또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쌀시장 개방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자유무역은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시위과정에 경찰버스에 불을 지르고 어린 전·의경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른 건 분명 잘못됐다. 목적이 아무리 옳고, 순수해도 수단과 방법이 옳지 못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 방패에 맞아 농민이 사망한 사건 또한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농민 시위가 폭동에 가까워도 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농민이 사망한 사건은 결국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이 사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사퇴했다. 그러나 고의적 살인도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인데 직속 상관도 아닌 경찰청장이 사퇴한다는 건 잘못됐다는 경찰 내부 여론도 우린 이해할 수 있다. 법률적 잣대로도 경찰총수에게 잘못이 있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그만큼 존엄하고 신성하며 공직자에겐 도덕, 그 이상의 높은 가치를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어 어쩌면 경찰청장 사퇴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 모두 성숙해져야 한다. 농민시위는 물론 어느 집단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폭력을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폭력을 용인하면서 경찰총수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건 자신에게만 관용의 잣대를 갖고 있는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오 수 진 한국총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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