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산수유가 전해주는 봄소식

며칠 날씨가 포근해 지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 새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산수유 꽃망울이라고 하니까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꽃망울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는 큼지막하고 봉오리가 화려해 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하지만 노르스름한 꽃이 피어 있으니 봄이 온 건 맞지 않을까? 자잘하고 빛깔도 화려하지 않지만 산수유가 전해주는 봄소식은 상큼함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필자는 봄의 전령사 산수유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는다.

가장 먼저 느끼는 점은 부지런함이다. 다른 꽃들은 이제 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산수유는 핀다. 다들 추워 웅크리고 있을때 눈 비비고 일어나 가장 먼저 피어 봄이 왔음을 알려 준다. 아직 잎은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데 꽃이 먼저 나와 우리에게 봄소식을 전해준다. 새벽밥을 지어 먹고 나왔는지, 먼동이 틀 때 출발했는지, 봄에 가장 먼저 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이고 동네 어귀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다른 꽃들 일어나라고 기상나팔을 부는 것 같다. 잎도 없는 줄기에 매달린 노란 꽃이 마냥 신기하다.

두번째 산수유에서 보는 건 겸손함과 은은함이다. 조윤제 박사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은근과 끈기’ 라고 표현했지만 참 은은한 꽃이 산수유다. 멀리서 보면 노란 빛깔이 보이니까 산수유가 있나 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줄기 옆으로 난 작은 꽃대를 따라 자잘하게 피어 있다. 장미나 백합, 목련 등을 보면 크기나 빛깔에서 화려함을 느낀다. 그런데 산수유는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어디가 꽃이고 어디가 암술이나 수술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꽃잎도 알아보기 힘들다. 먼지 같기도 하고 짧게 잘린 실오라기들이 날아다니다 가지에 붙은듯하다. 가까이에서 보는 꽃은 이게 꽃인지 물감이 바람에 날려와 묻었는지 구별되지 않는다.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면서 은은하게 봄이 왔음을 알려 준다. 남들이 알건 모르건 자태를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피어 있다.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셈이다.

다음은 인내심이다. 추위에 움츠러들고 얼어 겨울을 지내기 힘들었을텐데 가녀린 게 강하게 이기고 일찌감치 봄을 맞는다. 다들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때 나온다. 엄동설한이 아무리 추워도 꿋꿋이 견디고 날이 풀리자마자 벌떡 일어난다. 참을성이 대단하다. 눈보라 매서운 추위에도 쉼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키워 꽃을 만든다. 남들이 보건 말건 묵묵히 봄이 올 때를 기다리는 마음은 우리에게 참을성을 가지라고 귀띔한다. 참지 못하고 화부터 내는 사람을 보면서 무던히 참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친다.

다음은 소박함이다. 자작나무는 줄기가 뽀얗고 아름답다. 모양도 예쁘게 자란다. 대나무는 곧고 늘씬한 몸을 자랑하며 자란다. 그런데 산수유는 생긴 그대로다. 어디를 보아도 꾸민 구석이 없다. 위로 뻗은 가지, 옆으로 뻗은 가지, 반듯한 놈, 휘인 놈 모두 제멋대로다. 인공의 흔적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게 자연스럽다. 곁가지가 나오면서 잡히는 방향대로 그냥 자라는 것이다. 빛깔도 줄기가 흙빛에 가까운 향토색이다. 줄기를 보거나 잎을 보거나 꽃을 보거나 어디나 친근감이 가고 정다운 우리의 친구 모습이다. 너무 깔끔한 친구보다 편안한 친구가 좋은 것은 이런 소박함 때문일 것이다.

키가 유달리 큰 것도 아니고 그냥 보통 나무 생김에 보통 크기 그대로다. 이 소박하고 자잘한 산수유는 항상 필자를 가르친다. 실속 없이 폼잡거나 잘난 체하지 말고 묵묵히 제 몫이나 잘하며 말만 앞세우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돼라고 말이다. “좀 힘들어도 쓰러지지 말고 참으면서 살라”고 한다. “사치에 눈이 멀지 말라”고 하고 “세상살이를 결대로 살아가라”고 일러준다. “어거지로 세상의 결을 돌리려고 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부지런함도 보여준다. 오랜 세월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정겨운 친구 모습을 닮은 산수유가 전해주는 봄소식을 접하면서 이 아침에 희망찬 하루를 연다.

/양 기 석 율곡교육연수원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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