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여중생의 재회

장금석 인천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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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6월 13일, 지방선거가 있던 날.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은 주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아닌 온통 월드컵에 가 있었다. 온 국민이 월드컵의 광풍에 젖어 세상사를 잊고 있을 무렵 경기도 양주에서는 미군의 궤도차량에 치여 두 여중생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던 심미선, 신효순 양이 자신들의 고향 마을에서 황토 빛 보다 붉은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이 사건은 월드컵의 열기 속에 그만 묻히는가 싶더니 인터넷을 통해 조금씩 그 진상이 알려져 온 국민의 가슴을 울리고 급기야 수십만의 촛불로 월드컵의 붉은 물결을 대신하였다.

미선이, 효순이가 우리의 곁을 떠난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또 다시 월드컵은 돌아왔다. “미국에 대해서 할 말은 하겠다”고 공언했던 노무현 정부 4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이 변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자. 미선이, 효순이를 살해한 미군은 무죄판결을 받아 유유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오만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공식사과 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평등한 소파협정은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한 채 주한미군의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역시나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냉혹하리만치 심판하였다. 그러나 투표율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국민이 선택한 것은 결코 한나라당이 아니다. 결국 우리 국민은 집권세력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었지만 대안적 탈출구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 상당수가 짜증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월드컵에서 찾았다면 이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월드컵이 끝나고 그 빈자리에 밀려드는 공허함은 또 어디에서 메울 것인가?

4년 전 미선이와 효순이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그것은 바로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와 평등이며 이를 통한 평화통일이다. 한 사회가 하나의 사회적 가치를 향해 나아갈 때 결코 자주와 평등, 그리고 평화통일은 헛된 꿈이 아니다. 하나의 촛불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거대한 민중의 횃불이 되었듯이 우리 모두가 미선이, 효순이와 함께 같은 꿈을 꾼다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장금석 인천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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