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회나 복지국가란 말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 세상이다. 배고픈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엔 먹고 살 수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되리라 생각했지만 굶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요즘은 어떤 삶을 누리며 사는가가 훨씬 더 중요해진 세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복지사회 이상에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다. 흔히 등장하는 웰빙이니 정신적 풍요니 하는 광고문구들도 이같은 현재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문화의 세기’라는 말도 경제적 풍요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먹고 살만큼 좋아진 상황에서 어떻게 살지가 관심사로 등장하는 건 당연하고 문화생활을 누리는 건 복지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귀족이나 부유층만이 문화상품을 소비하던 과거 서구사회에서 평민이나 빈민층에게 미술품 감상이나 음악 감상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19세기말 제7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가 등장하자 독일 사회학자 발터 벤야민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논문을 통해 문화적 민주사회 이상의 실현을 예견했다. 필름 복제를 통해 수없이 재생산될 수 있는 영화의 특성을 통해, 순수예술의 원작이 지니는 진본성(眞本性)을 없애고 대중과의 거리를 감소시켜 많은 사람이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그의 설명은 ‘모나리자’의 모작을 보고 원작 감상을 주장할 순 없지만, 전국에서 동시 상영되는 ‘왕의 남자’를 보고 진본 다툼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벤야민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상품들을 소비하고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혜택이 민주사회를 이룩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파악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이 문화복지 제로를 모토로 벌이는 미디어센터 건립 등의 문화저변확대사업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19세기말이나 20세기초보다 훨씬 더 첨예한 영상시대에 문화생활은 영상문화상품의 생산·소비와 무관하지 않고 여기에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스토리와 문법을 읽고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능력이 밑거름이 된다. 한발 더 나아가 문화저변 확대는 향후 문화상품들을 능동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인력을 조기 교육하는 인력 양성사업이다. 미디어센터 건립·운영, 찾아가는 콘텐츠 상영회는 배부른 얘기가 아니라 교육사업이자 복지사업이며 더 넓게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민주화사업이다.
/김병헌 경기디지털콘텐츠 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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