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또 하나의 세상, 흙은 무수한 생물들이 살아 숨쉬면서 씨앗을 싹틔우고 끊임없이 양분과 수분을 공급해 우리의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게 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흙을 한자로는 ‘土’라고 해 우주 만물을 형성한다는 다섯가지 기본 힘 가운데 하나로 분류해 왔다. 작물 생육이 가능한 1㎝ 정도의 흙이 만들어지는데 300여년이 걸린다. 실제로 작물이 자랄 수 있는 대부분의 토양은 몇천만년에 걸쳐 만들어진다. 풍화가 덜 된 미숙한 흙에선 생명을 기르는 힘이 없고 살아있는 흙에서만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며 잎과 줄기가 썩어 유기물이 되면서 부드럽고 거무스름한 흙으로 만들어진다.
흙은 모든 것들을 포용한다. 인간이 버린 각종 쓰레기나 폐수 등 오염물질들을 받아들이고 말없이 아파하면서 천천히 정화시킨다. 선조들은 뜨거운 물을 버릴 때 반드시 적당하게 식혀 버렸다. 이는 땅속 생명체에 대한 존엄과 배려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흙은 어머니 가슴처럼 지렁이나 세균 등 무수한 생명체들이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가게 하면서 모든 식물 성장에 필수적인 에너지와 물질을 공급하며 생태계를 순환시킨다. 우리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건 흙이 식물을 키워 산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며 온갖 동물들이 내놓는 분뇨를 분해, 환경을 깨끗이 정화시켜준다. 이것은 바로 흙의 힘이다.
이처럼 소중한 흙이 근래 농약이나 비료, 각종 폐기물 등으로 크게 훼손되고 있으며 생태계 연결고리마저 파괴되고 있다. 흙이 자정능력을 상실하면 농업생산기반 전체가 영향받아 정상적인 농산물 생산이 어려워지고 피해는 당장 농업인들에게 돌아 오며 소비자들 역시 불이익을 받는다. 토양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선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이해하고 친환경 농자재 사용과 농약이나 비료 주는 것을 최소화하며 생활·산업폐기물 등 환경오염물질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위해 흙도 사람처럼 매년 또는 2년에 한번은 건강검진을 받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처방해야 한다. 이제 푸르렀던 여름도 지나고 얼마 전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면서 흙살 한움큼을 손에 꼬옥 쥐며 떠올렸던 시 한구절을 소개해 본다.
“죽어서 썩어지는 것은 내게 오라/잠든 것들은 모두 이듬해 연둣빛으로 움트게 하리니/그저 바람처럼 지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다시 사는 부활의 밭임을/들녘 출렁이며 매어달린 알알한 낟곡으로 보이리라//”
/김경배 화성시농업기술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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