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중년기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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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잎새가 뚝뚝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데 후배가 물었다. “중년기를 무어라고 생각합니까?” “아! 내가 중년기이구나!” 사뭇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초라해진 몸과 마음을 만나게 된다. 몸도 마음도 앙상하고 건조한 나무가 돼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중년기는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 초입의 나무라고 생각된다.

아지랑이 어릿거리며 피어오르는 그 틈 사이로 애처로운 아기의 손 같은 어린잎을 온 몸에 치장하고 화려한 봄날을 맞던 나무였다. 그리고 여름의 뜨거운 햇살 속에 땀 흘리는 열정과 풍성한 활동으로 제 몸에 달콤한 에너지를 모아 수많은 나뭇잎과 꽃으로 열매를 만들었다. 그리고 화려하게 색감을 풍기며 열매를 자랑하는 가을을 거쳐, 이제는 초연히 자신을 정리하며 가난하고 고독한 겨울의 초입에 서 있는 나무를 본다. 긴 겨울 눈보라 속에서 자신의 건조한 모습을 내보이게 될 나무는 자연과 어우러져 겨울을 이겨 나가는 모습 또한 자랑스러울 것이다.

중년이란 우리 인생의 여정이 나무처럼 자랑스럽고 겸손하며 단단한 모습으로 살아 온 날들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소박하고 차가운 모습의 노년으로도 살아가는 게 아닌가. 은행나무의 황금빛 잎들이 춤추듯 떨어져 도로변에 소복하게 쌓이고 있다. 불 타는 단풍나무의 잎들이 꿈길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중년은 과거의 아름다움에 연연해하지 않고 잎도 열매도 떨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로 서 있을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 또한 내 인생의 화려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그러나 속이 단단하고 다가 오는 추위도 받아들이는 겸손한 중년기를 앞에 두고 있다.

중년기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처럼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와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젊은 시절의 뿜어 오르는 열정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준비된 노력이 열매로 떨어지는 시간들에 감사해야 한다. 주위의 번잡함을 조금은 피하고 혼자의 시간도 보내며 고독한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해야한다. 평소에 하지 못하고 동경하던 일들을 시작하고 가능하다면 여행도 즐겨야 할 것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는 우리에게 지혜를 넓혀주는 좋은 친구이다. 중년기를 맞는 이들, 중년기를 맞는 사회, 중년기를 맞는 세상 등은 조금은 더 겸허하고 조금은 더 가난하고 고독을 즐기며 조금은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나 혼란한 세상, 깊은 병이 든 사회 염려를 중년을 맞은 이가 하고 있다.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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