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로 당도할 것 같은 12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날리더니 순백의 눈이 내렸다. 눈 내리는 빙점 아래에선 많은 것들이 화석이 된다. 여름철 ‘후두둑’ 쏟아지던 빗방울 대신 ‘사뿐히’ 내리는 눈은 깊이와 여유를 지니고 있어 좋다. 내년 우리 경제도 순백의 눈처럼 깊이와 여유를 갖는 한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돌이켜 보면 우리 경제는 세계인이 부러할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세계 11위 교역규모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 원동력이란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다른 민족이 지니지 못한 근면성 덕분이다. 경제성장과정에서 웬만한 어려움쯤은 거뜬히 극복하는 강한 내성도 갖췄다. IMF 위기 극복사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망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성급한 자괴심이다. 문명의 큰 흐름 역시 아시아로 옮겨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가운데 IT를 결합한 한류문화 힘이 아시아를 넘어 거대 선진국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어제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오늘의 고부가가치 IT강국으로 크게 변모하고 있다.
이처럼 파릇파릇한 국민성과 국민 개개인의 내면에 샘솟는 에너지가 세계 방방곡곡에서 영향력을 분출하고 있다. 특히 예능과 스포츠 분야의 두각은 매우 괄목할만하다. 굳이 낙후된 분야를 꼽으라면 정치 이외에 금융산업을 들 수 있다. 금융분야 또한 그동안 선진기법 축적으로 동북아 금융허브 기틀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 어찌보면 작금에 회자되는 투명성의 강조, 복지와 분배의 실현, 마찰을 빚고 있는 사회 각 분야 충돌은 선진사회로 가는 하나의 진통과정일지 모른다. 선진사회로 가는 세계화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라면 그 기본은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냉정히 살펴보면 우리는 얼마나 기본을 망각하며 지냈던가. 얼마 있으면 새로운 한해가 열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부푼 희망과 각오를 다질 것이다. 경제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내일의 희망마저 어두운 건 아니다. 희망은 인류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힘이다. 추운 눈 속에서 피어나는 화석이 아름다운 것처럼 다소 힘들더라도 푸른 희망을 안고 활기찬 새해를 맞이하자.
/최길현 신용보증기금 군포지점장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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