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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겨냥한 중국의 으름장?…‘황후화’ 노골적 중화사상에 심기불편

지난 12일 거장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 시사회가 열렸다. 등장인물들의 복식부터 가구며 집기류까지, 황후의 머리장식에서 손톱 노리개까지 황금색이 화면을 압도하며 파도처럼 넘실댄다.

색채와 스케일에 대한 욕심의 ‘극치’

황금과 진분홍 빛을 뿜어내는 궁궐의 기둥과 수려한 창틀은 그 자체로도 ‘전시된’ 예술품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배색한 카펫이나 중양절용 식탁 등에서 보듯 보색대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수천 궁녀들의 가슴골이 드러나는 의상도 볼거리에서 빼놓을 순 없겠다.

사치스럽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영상미에 더해 화면을 압도하는 것은 거대한 스케일이다. 영화 후반부 황후의 반란군과 황제의 군대가 벌이는 전투신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반란을 일으킨 자를 ‘창’으로, 지키는 쪽을 ‘방패’로 표현했는데 1:1 싸움이 아니라 10만 반란군 대 10만 정부군(영화에는 반란군이 10만이라는 것만 명시)이 ‘덩어리’가 되어 전투를 벌인다. 2002년 ‘영웅’으로 시작된 장예모의 색채와 스케일에 대한 욕심은 2004년 ‘연인’을 거쳐 ‘황후화’에 이르러 극치를 이룬다.

헐리우드 대작에 대한 중국식 경고!

그런데 ‘황후화’에서 보여지는 색채와 규모의 물량공세가 순수한 탐미주의만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황후화’를 보노라면 마치 ‘블록버스터? 이 정도는 되야지’라는 으름장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물론 ‘어디서 까불어?’ 호통을 치는 대상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다. 어쩌면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황후화’와 같은 편에 서서 헐리우드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다고 박수라도 쳐주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골적인 중화사상은 보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위에서 말한 전투신 얘기를 다시 하자. 핏빛 전투가 끝나고, 궁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내시들이 튀어나와 시체를 치우고 궁궐뜰을 삽시간에 노란 국화밭으로 만드는 장면에선 혀가 내둘러진다. 내가 그들의 적군이라면 끝없이 나오는 사람 수에 절로 기가 질리는 형국이니, 그야말로 영상 하나로 ‘인해전술’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중국의 힘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셈이다.

작은 이야기 큰 그릇에…과분한 사치

또 한가지. 너무 작은 이야기가 큰 그릇에 담긴 점도 화려한 영상미를 과분한 사치로 보이게 한다. 당나라 말기 황실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을 빼고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배신에서 배신으로 이어지는 한 가족의 치정극이다.

어머니는 전처가 낳은 첫째 아들과 근친상간 관계이고, 이를 안 아버지는 서서히 부인을 죽여가고, 눈 뜨고 죽임을 당할 수 없는 부인은 반란을 준비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반란에 둘째 아들을 끌어들이고, 모든 지저분한 내막을 다 알고 있는 셋째는 부권에 도전한다. 황제의 자리를 둘러싼 정치적 암투극이 아니라, 근친상간을 둘러싼 치정극인 탓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물론 모든 반란과 혁명 뒤엔 아주 작은 원한과 개인의 감정이 개입돼 있다. 한 가족의 소소한 이야기를 찬란한 영상미로 그려내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나 작품의 필요에 의해 필연적으로 쓰여졌을 때와 무용담 늘어놓듯 솜씨자랑을 위해 쓰였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의 감정은 전혀 다르다.

장예모 감독 18일 내한

‘황후화’의 제작비는 총 450억원. 황후의 옷과 황제의 갑옷, 왕관 등을 실제 18K금으로 만들고, 대대적으로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오색찬란한 세트와 군인들의 무기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제작비지만 제작사는 걱정 없을 듯하다. 화려한 영상미를 갖췄다는 입소문과 함께 세계적인 거장 장예모가 연출했다는 점, 아시아에서 사랑받는 공리와 주윤발이 주연을 맡았고 떠오르는 신성 주걸륜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티켓 파워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14일 현지 개봉 4일만에 9600만 위안(약 115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시작해, 지난 3일 2억7000만 위안(약 324억원)을 기록하며 중국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이는 장예모가 감독한 ‘영웅’이 가지고 있던 종전기록 2억5000만 위안(약 300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러한 승승장구에 힘입어 중국 내부에서만 10억 위안(약 1200억원)의 흥행 수익이 예상되고 있다.

18일 장예모 감독이 내한한다. 2004년 8월 ‘연인’ 홍보 차 방문한 후 2년 여 만이다. 사실 장예모는 ‘영웅’ ‘연인’ 같은 대작뿐 아니라 ‘귀주이야기’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해피 타임’ ‘천리주단기’처럼 작은 이야기로 큰 감동을 만드는 감독이다. 최근의 대작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작은 심리묘사에서 거대한 영상미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그이기에 우리가 거장 혹은 천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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