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우리 곁에 있어야 할 벗

이광용 수원여대 산학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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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미술대전이 다가오면서 미술작품에 대한 최근의 주식시장 못지않은 투자 열풍을 생각해본다. 얼마 전에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 ‘빨래터’가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45억여원에 팔렸고,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경매에서는 서양화가 홍경택의 ‘PencilI’이 6억5천여만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작품의 홍콩 크리스티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우리나라 화가들의 그림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싶어 흡족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몇십억원, 아니 몇백억원씩 하는 외국 화가들의 그림 얘기를 들으면 기분은 달라진다. 우리 예술작품에 대한 자긍심은 사라지고 상대적 빈곤감과 왜소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국내 작가나 작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 역시 상대적으로 적은 가격이 매겨질 때 그 작품에 대한 나의 좋은 느낌도 상대적으로 손상을 입는다. 가격이 그림의 가치를 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그림을 부를 창출하는 투자 상품으로 만들면서 우리의 미술작품 감상 태도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애석하게도 대중과 미술 작품 간의 거리를 넓히고 있다. 원래 예술은 삶 속에서 녹아 우리 삶의 일부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삶의 모습이며, 어느 특정인의 독점 대상이 아니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에 들면 곁에 두고 즐길 수 있는 벗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벗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까이 할 수 없으면 어떻게 벗이 될 수 있으랴. 그 벗이 미래에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지게 되는 거라면 어떻게 순수한 삶의 벗이 될 수 있으랴. 자연히 일반 대중은 예술작품과 격리되는 것이다. 이같은 소외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기보다 가난하게 만든다. ‘좋은 작품이다’가 ‘비싼 작품이다’는 말과 동일시된다면 미술작품은 얼마나 단순하고 가난해져버리는가. ‘좋은’ 작품을 가지려면 돈이 많아야 되니 이 또한 얼마나 상대적 빈곤감을 자아내는가.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기는 군소 화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래저래 그림 가격이 너무 올라가는 건 화가들에게 좋은 일이 될지는 모르나 일반인들에게는 그림이 멀리 도망가는 느낌이다. 화가들도 자존심 때문에 그림을 싸게 팔 수 없어 그들에게 가까이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다. 경기미술대전에서는 사람들이 비싼 작품이 아닌, 진짜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이광용 수원여대 산학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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