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느낌

조용주 두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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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문명에 익숙한 우리는 앞선 세대에 비해 너무 야멸차게 살아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어린이들이 놀면서 저지레를 하면 부모들은 몹시 엄한 얼굴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의 용서를 이미 했노라는 익살스런 표정을 살짝 내비춰 애들을 안심시켜 준다.

하지만 요즈음 부모는 용서할 것과 꾸중할 것을 마치 자로 그은 듯 정확하게 나눠 한치의 용납도 있을 수 없다는 모습이다.

옛 것과 지금의 것에서 다른 점을 고르라면 물론 수도 없이 많겠지만 아마도 여유와 같은 빈 자리가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이외의 대상을 감각할 때 적당히 떨어져 느끼려는 본능적인 경계심리가 있다. 하지만 가족과 같이 친밀감을 갖는 대상은 자주 가까이 대고 비비면서 뽀뽀하고 만져주기를 바란다. 친밀감을 가진 대상은 자기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다음으로 자기를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에 자주 접촉하려고 하는 것이다. 친밀감은 곧 마음의 여유를 담은 포근함이기 때문이다. 낯설은 것이라도 빈 공간을 둔 듯이 여유롭게 전달되면 우리 몸은 자극을 천천히 느끼면서 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받아들일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갑자기 다가오거나 몸에 붙어버리면 우리는 불안해하면서 피하려고 하거나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여유도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는 여유 못지않게 마음처럼 보이지 않는 여유도 우리에게는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 몸의 면역계에서도 역시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면역계의 인식방식도 몸의 감각방식과 원리적인 면에서는 거의 같은 방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면역계의 여유도 면역반응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대표적으로 소화기의 면역학적인 관용이 그런 여유를 나타내는데 음식은 이물질에 해당되지만 음식과 만나 죽기살기식으로 면역반응을 하지 않고 천천히 소화시켜 음식과 같은 이물질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만약 이러한 작용이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모두 굶어죽게 될 것이다.

우리 몸의 정기가 부족하고 여유가 없어지면 기혈이 불안한 상태가 돼 몸에서 흐르는 기의 질서가 문란해지게 되는데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영위불화’라고 하며 현대의학의 불안한 면역상태와 흡사하다. 주로 알레르기 질환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 몸에서 흐르는 기의 양과 질적인 상태는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에 정확하게 일치한 상태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조금은 여유를 두고 넉넉하게 빈자리를 가지면서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한의학에서 오행의 토 작용에 해당된다. 흙과 같이 우리 삶의 여유로운 빈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와 마찬가지로 면역계의 작용도 이러한 넉넉한 여유가 정말로 절실하게 필요하다. 요즈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을 한다. 사람들이 너무 팍팍하게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조용주 두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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