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어떤 일을 접할 때 소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애써 숨겨진 다른 의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검찰 수사든, 세무조사든 그것이 정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더라도 일단은 거기에는 권력에 밉보인 사람이나 기관에 대한 보복성 조치, 혹은 그들을 길들이려는 의도나 다른 목적을 거두기 위한 계산적인 행동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 전 고려대에 대한 정원 감축조치 예정 발표도 지난 2004년 병설 보건대와의 합병조건으로 제시한 교원확보율을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의 조치였지만 내년도 내신 실질반영률을 가장 낮게 책정한 이유 때문에 보복성 제재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절차나 공정한 법 집행이 이런저런 상황과 결부되면서 본질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여러가지 과거 경험들이 이러한 시선의 적절성을 확인시켜준 탓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삐딱한 시선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방어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신반영률과 교원확보율 등이 연계된 정원 감축문제를 결부시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교원 확보율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책임 회피를 지원하듯 일각에선 이러한 행·재정조치가 상위 법에 위반하는 것이라거나 교육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실상 중요한 것은 이것이 상위법에 어긋나느냐, 아니냐, 보복성 조치냐, 아니냐 등이 아니다. 원래 행·재정지원 조건에 대한 상호 약속을 지켰느냐, 또는 안 지켰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그것과 내신반영율의 문제는 별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약속의 이행 여부보다 제재조치의 시기를 따지고, 그것의 법적 정당성을 따지며, 숨겨진 의도의 유무를 따진다. 이런 삐딱한 시선이 우리의 상황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이래가지고 무슨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이유와 법적 근거들을 잘 들이대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사회, 힘없고 무식하면 지킬 것 지키면서도 힘들게 살아야 하는 사회, 재개발 계획에 순순히 따르면 적게 보상받고, 끝까지 버티면 많이 보상받는 사회, 시위 등 단체행동을 하면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합리적이고 평화적으로 항의하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나라의 미래와 발전보다 당장의 정권 유지나 창출을 위한 실천에만 골몰하는 사회…. 이런 사회이다 보니 순수하고 진실한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상호간에 합의된 약속은 그 무엇에도 우선해서 지켜져야 하는 사회는 우리에겐 과분한 것일까.
이 광 용 수원여대 산학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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