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다시 찾은 상하이는 참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ASEM 교육연구 허브 구축 국제회의’ 참석차 그 곳에 간 나는 뜻밖에도 ‘인생사계 쾌락학습’이라는 독특한 명제의 상하이 학습축제에 참석하게 됐다. 당서기장 쯤 되는 듯 꽤나 높은 지위의 고관들과 함께 향기 좋은 차를 마시며 거대한 컨벤션 스타디움 맨 앞줄 VIP석에 앉아 개막식을 참관하면서 나는 뜻밖에 상하이의 저력과 위용 그리고 그들이 일궈 낸 놀라운 성장의 진원지를 만나 볼 수 있었다.
만리장성의 위용보다 더 무서운 대국의 학습저력이 물씬 배어나는 축제였다. 거대 도시 상하이의 수십 개 디스트릭(社區)과 커뮤니티(洞) 주민 모두가 함께 하는 그야말로 거대한 학습공동체 축제였다. 그 많은 상하이 시민들이 모였건만, 소란 한 점, 흐트러짐 한 점 없었다. 고요함과 엄숙함, 일사분란함과 질서정렬함 속에 묘하게도 엄청난 힘과 에너지와 다채로움과 생동성의 학습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한쪽 팔을 들어 올리는 듯한 포즈의 독특한 거수 인사, 우렁찬 힘이 넘쳐나는 에너지 박수 등이 내겐 ‘상하이식 중국의 위력’으로 느껴졌다. 가장 중국적인 전통과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신세기적 문화학습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른바 ‘과거-현재-미래 공존형 한편의 퓨전학습드라마’였다.
우리의 학습축제와는 사뭇 달랐다. 요란한 폭음의 불꽃놀이나 유명세를 타는 대중스타의 열광하는 환호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속에 지적이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그들의 학습축제는 시작됐다. 인생사계 학습축제는 만삭의 임신한 젊은 어머니가 태어날 아이에게 축복과 함께 뭔가 좋은 교육적 가르침의 경귀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서 아주 작은 꼬마들의 뮤지컬 경극, 어린 학생들과 청소년들의 다채로운 생활속 체험학습공연, 광부아저씨에서 거리의 미화원, 작업장 노동자, 지식인 등 각계 각층이 함께 하는 시민 대학습 시연과 일상학습 리포트가 무려 4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의 밝은 미소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족히 80~90세는 됐음직한 머리 허연 어르신들의 작품 낭독과 역사 연설 중국체조 시연, 상하이 시민대합창 피날레 등 인생사계를 어우르는 쾌락학습축제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축제 백미 중의 하나는 축제의 한 막이 끝날 때 마다 주어지는 학습대상 이벤트였다. 뱃속 아기부터 어린아이들과 어른, 노인들에 이르는 참으로 많은 이들에게 상이 주어지는 시상식이었다. ‘용감한 마음을 가진 시민상’, ‘매력적 아기상’, ‘성공한 커리어인상’, ‘길거리 학습상’, ‘멋진 일터학습인상’, ‘역경 극복상’ 등 명칭도 이색적이고 다채로웠다. 마치 상하이인 전체가 상을 받고 모두가 상을 주는 듯 기쁨과 환희 속에 위대한 학습공동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축제가 끝날 무렵 나는 오랫동안 기립 박수를 치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 참으로 배울 것이 많은 감동스러운 시간이었다. 독특함이 듬뿍 묻어나는 축제였기에, 몇 사람만의 축제가 아닌 상하이 모두의 축제였기에,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효과적 축제가 아닌 생활 속에 체화되어 깊숙이 뿌리내린 삶의 축제였기에, 중국의 힘과 학습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일렁대는 학습축제였기에 그랬다. 그 속에서 나는 그들의 교육과 학습의 스펙트럼이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전생애화 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구호나 개념이 아닌 ‘삶 속에 체현된 생애학습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한 필의 아름다운 ‘학습비단’을 빚어내듯, 학습경험과 저력을 씨줄, 날줄로 자아내는 그들의 ‘상하이식 학습축제’에서 우리와는 또 다른 공신(工夫의 神)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07년 11월 그렇게 그들의 인생사계 학습은 계절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 옛날 문익점 선생이 붓통 끝에 목화씨 한 점을 몰래 들여오듯, 지금 예서 우리는 그 무엇을 배우고 그 무엇을 들여올 것인가?
최운실 아주대 교육대학원장 한국 평생교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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