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 - 희망등대 프로젝트

이태희 서울지방교정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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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후 미국에선 ‘법과 질서’를 기치로 집권에 성공한 닉슨 행정부가 막대한 자금과 인력 등을 투입, 행형을 포위하고 요리했다. 그때까지도 가장 구태의연하고 낙후성의 표상인 양 치부돼 오던 사법행정분야, 이 중에서도 특히 교정행정에 사회학자, 심리학자, 형사학자 등이 대량 진입했고 형사정책적 방법론으로 제시돼 왔던 모든 이론과 처방 등은 원도 한도 없이 현장 행형에 다이내믹하게 접목됐다. 그러나 그 엄청난 예산과 과학적 방법의 투여를 아랑곳하지 않고 범죄자들은 연일 격증했고 큰 기대를 품고 관여했던 학자들은 뾰족한 변명의 자료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한 완벽한 실패에 두손을 들고 학문적 만용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은 ‘인간교정’이란 거창한 구호를 슬그머니 접고 구금으로 인해 인간성이 더욱 악화되는 것만이라도 차단시켜 보자는 겸허한 입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으나, 그나마도 넘쳐나는 수용인원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격리·구금기능 그 자체를 수행하기도 벅찬 실정에 이르고 말았다.

이처럼 행형은 힘들고 두렵다. 범죄자들의 우리에서 구두선(口頭禪)적 구호나 섣부른 인간애, 또는 과도한 온정주의 등이 자리를 잡기란 결코 용이하지 않다. ‘늑대로 가득한 세계에서 양으로 보이면 곤란을 겪게 된다’는 말이 있듯 말이다.

그러함에도 행형은 형벌의 본질인 응보와 또한 이와 상충되는 범죄자들의 재사회화를 동시에 추구해 나가야 하는 당위론적 업보를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이 둘을 함께 아울러 ‘범죄의 회귀’를 줄여가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많은 교정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이로 인해 최근 형벌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고 있는 게 바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회복적 정의란 형사사법체계에서 소외돼 왔던 범죄 피해자를 교정단계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이들 간의 소통과 중재를 통해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범죄가 피해자와 사회에 어떠한 아픔을 끼쳤는지 깨우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형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위로 야기된 해악을 이해·반성하도록 해 그 피해의 회복과 정의의 실현에 솔선하도록 유도함은 물론, 그 이행도를 행형성적에 반영함으로써 수형자사회를 정화시키고 미래범죄를 예방해 나가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종래 수형자들이 반성과 회오라는 강요되고 막연한 숙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깨우치고 피해자와의 갈등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이미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교정단계에서의 ‘회복적 정의’ 접목으로 재범률을 대폭 감축시키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바, 국내 행형에도 이를 도입·시행하고자 서울지방교정청은 지난 6월14일 경기일보사와 함께 ‘희망등대 프로젝트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공청회도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현재 기획·홍보·재정·화해중재·교육문화·자립지원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죄의 편지쓰기 운동’과 ‘희망나눔 문화여행’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무쪼록 교정단계에 ‘회복적 정의’가 구현됨으로써 보다 많은 수형자들이 진실의 시간을 접하고 그로 하여 교정시설이 징역살이의 지혜만을 탐하는 ‘선량한 수형자’를 뛰어 넘어 ‘선량한 사회인’을 배출할 수 있는 시설로 정착돼 나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이태희 서울지방교정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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