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불과 4개월 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치룬 것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선거공화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거의 매년 각종 선거들이 있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투표와 개표 등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로 정착됐다.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기 위한 각종 선거가 이처럼 성공적으로 정착되기까지 우리도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 정부 수립 60년의 역사 가운데 그래도 남녀 간 투표에 차이를 보여 준 일은 없었다. 여성 참정권에 제한을 둔다면 엄청난 대혼란이 올 것이다.
영국은 18세기 말에 매리 월스톤크라프트가 ‘여성의 권리’란 책을 통해 여권 신장에 대한 입장을 밝혀 여성들에게 기본적 권리인 평등권과 능동적 기본권인 참정권을 외친 것으로 유명하다. 계몽시대와 산업혁명기를 거친 후인 19세기 참정권 운동(Chartism)은 대부분 남성 위주의 권리 신장이었을 뿐 진정으로 남녀평등을 위한 운동은 아니었다. 20세기초 영국에선 여성 참정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에멀린 팬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가 여성사회정치연합(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을 통해 강력한 여성 투표권을 위한 운동에 돌입했다.
아무래도 투표권 쟁취를 위한 초기 단계이기에 체계적이고 조직화하기 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지극히 초보적이고 어색한 수준의 운동에 불과했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인지 에멀린의 딸들인 크리스타벨과 실비아(Christabel and Sylvia)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대부분은 기존 제도권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주창하는 수준이었지만, 에멀린과 추종자들은 말보다는 행동(Not Words But Deeds)을 외치면서 점잖은 수준의 운동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폭력을 동반한 운동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경찰 등 사법기관에 체포된 경우 단식 투쟁도 불사했고 강제로 음식이 주입돼 회복되면 다시 원기를 얻어 투쟁에 돌입했다.
심지어는 왕의 마차에 뛰어 들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투쟁을 지속했다. 그들의 강력하고 전투적인 투표권을 위한 주창자들을 ‘Suffragettes’이라고 하여 점진적인 개혁주의자인 ‘Suffragists’들과 구별하기도 한다.
다만 예기치 않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남성들은 전선에 투입되고 여성들은 군수산업에 종사하면서 선거투쟁은 잠시 소강상태였다. 이로부터 4년 후 전쟁이 끝나고 다시 여성에 대한 선거 명분이 살아나면서 마침내 여성들에 대해 투표권이 부여됐다. 그렇다고 완전한 투표권 보장이 아니라 30세 이상 여성으로 일정한 세금을 납부하거나 배우자가 납세자인 조건이 돼야 투표권이 주어지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제도의 개혁이 단숨에 이뤄지지 않듯 여성 투표권 보장도 중간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세금 납부와 관계 없이 모든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은 이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더 흐르고 이뤄졌다.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남녀 투표권 보장도 결국 적지 않은 투쟁의 과정을 거친 것을 보면 세상 모든 이치가 반드시 상식과 순리에 따라 정착되기까지 나름대로 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새삼 깨닫는다.
/대전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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