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부의 첫 번째 역할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다음 세대를 위한’ 지원과 관리를 꼽는다. 인류 상호간, 그리고 인류를 둘러싼 세계와의 소통이 누대에 걸쳐 적층된 것이 문화이므로 이는 당연하다. 문화정책의 효과 또한 그 회임 기간이 매우 길다. 이렇게 느려 터진 정책 효과 가운데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문화와 예술이 주는 창의성과 상상력일 것이며, 이에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줄 믿는다.
문화정책은 앞 세대와 다음 세대를 잇는 정책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모든 역사는 결국 문화사이다. 문화정책의 대상은 크게 창조(창작, 생산), 전달(계승, 촉매), 수용(향수, 참여) 활동으로 나뉘며, 이 모든 과정에 두루 기능하는 것이 교육이다. 특히 문화의 고갱이인 예술에 대한 교육을 통해 동시대 국민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발현된다. 이는 다시 정치, 경제 등 사회의 다른 분야를 발전시키는 원천이 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인다. 예술교육 정책이 문화정책의 핵심인 까닭이다.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은 일찌감치 예술교육을 5대 목표에 포함하였으며, ‘1986~1990년 5개년 계획’에서는 예술인, 예술단체, 관객·청중과 함께 정책대상의 4대 기본요소로 설정하였다. 또한 ‘전략계획 1999~2004’는 세 번째 목표로, ‘전략계획 2003~2008’은 두 번째 목표로 예술교육을 두고 있다. 이 예술교육에 있어서는 연방정부의 교육부보다 국립예술기금이 더 강력하고도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프랑스, 스웨덴,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예술교육 정책을 꾸준하게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06년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시행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됨으로써 법적, 제도적 문화예술교육 지원 토대가 마련되었다.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가동되었던, 당시 문화부와 교육부의 업무 공동 추진 체계는 우리 중앙 부처들의 생리상 그리 흔하지 않은 모범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법무부, 국방부, 서울시교육청 등 직접적인 관련 기관들과의 업무 협조도 아주 잘 이루어졌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던 교육진흥원이 요즘 구조조정 소문에 휩싸여 있다. 그 향방을 두고는 확인되지 않는 말들만 무성하다. 하지만 우려의 소리보다는 이번 기회에 예술교육 정책의 기틀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서 문화정책의 핵심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훨씬 많아 참으로 다행이다. 그 가운데 예술진흥 정책의 최일선 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의 통합이 어떠냐는 의견에 우리는 주목하고 있다.
예술의 창조, 전달, 수용 등 예술진흥 정책의 전 과정에서 교육은 필수적인 수단이다. 예술은 어린 시절부터 즐겨 체험하지 않고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잘 찾지 않게 되는 경험재이자 가치재이므로 이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진흥 정책과 예술교육 정책이 결코 별개로 수립되거나 분절적으로 실행되어서는 아니 된다. 미국, 영국 등 다른 모든 나라들이 예술교육 정책을 관장하는 별도의 독립기구를 두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국립예술기금이, 영국은 예술위원회(ACE)가 예술교육 정책을 총괄한다. 이들 두 기관이 우리나라로 치면 바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아닌가. 교육진흥원이 어떻게든 모습을 바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다 예술위원회도 조직과 사업의 대폭적인 개선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예술위원회의 예술 창조, 전달, 수용 지원 정책과 교육진흥원의 예술교육 지원 정책이 체계적·통합적 관점에서 선순환적으로 추진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박상언 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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