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촛불 시위로 시청 앞 광장이 흰 새벽까지 하얗게 물들고 있는 요즘 문득 지난 ‘97년 작고하신 근세기 민중교육의 선봉 프레이리 선생을 회고해 보게 된다. 압박받는 민초집단들을 위해 생을 바치셨던 선생이 남기신 ‘굴레를 벗어나는 희망의 교육학’이 오늘 유독 생경함으로 다가온다.
빛바랜 연구실 서가의 한 구석에서 오랜만에 선생의 ‘압박받는 자들을 위한 교육학’과 ‘민중교육론’을 꺼내 들어 먼지를 털며 70년대 말, 80년대 초 나의 젊은 대학원생 시절의 상념을 떠올려 본다.
당시 교육사회학도였던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의 민중교육론에 심취해 있었다. 아마도 70~80년대 이 시대의 젊은 지성들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밤을 새워 가며 열정과 흥분으로 읽어 내렸음직한 선생의 민중교육론이었을 게다. 선생의 책 속에는 ‘압박받는 자들을 위한 해방의 민중교육’을 위한 혼이 담긴 글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선생이 외쳤던 종속론과 민중교육의 무대는 당시 압박받는 제3세계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선생은 그 시대, 그 곳에서 압박받는 민중들을 위해 ‘참 의식’을 깨우치기 위한 성인문해 교육운동을 몸소 실천했었다. 참 대화를 통한 프락시스 실천교육을 통해 선생은 ‘앎과 생각하는 의식과 행동’이 하나로 엮어지는 실천의 학습망 연대를 외쳤었다.
암묵지를 끼워 맞추는 식의 길들여진 죽은 교육을 강하게 거부했던 선생은 단순한 지식의 저장식 교육을 강요하는 ‘은행저축식 교육’의 종식을 위해 절규했었다. 자신이 처한 사회 경제 문화적 구조의 모순을 깨닫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실천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의식화 교육으로서의 ‘문제제기식 교육’을 피력했었다.
최근 평생교육법 정부 개정안에 의해 국가적 평생교육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강화되고 있는 한국의 성인문해 교육을 지켜보며 다시금 선생의 민중교육으로서의 성인문해 교육 실천운동을 떠올려 보게 된다. ‘민중의 학습권’ 이라는 차원에서 문해교육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문자교 육, 즉 단순히 글을 읽고 쓰게 가르치는 도구적 교육이 아니라 학습권 보장을 위한 평생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교육의 차원에서 문해교육에 접근해야 한다. 글자 익힘의 교육을 넘어서는 일이다. 읽기·쓰기·셈하기 교육을 넘어 ‘생각과 의식과 실천’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
평생교육 차원에서 전국의 야학과 평생학습관, 문해교육기관,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들 그리고 수많은 복지관과 여성교육기관, 노인교육기관들이 땀흘려 일궈내고자 애쓰고 있는 성인 기초문해 교육사업들이 선생의 민중교육의 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교육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선생의 민중교육론이 다시금 이 땅에 의미 있는 성인 기초문해 교육실천을 통해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문해교육 종사자들에 따르면 이 땅에 아직도 400만 이상의 성인 기초문해 교육 대상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을 위한 인권이자 학습권 보장으로서의 ‘디딤돌 교육’이 리얼한 삶의 교육으로 살아 숨쉴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20~30년대 ‘민중 속으로의 보나로드 운동’ 처럼 오늘 이 땅의 평생교육실천가들이 새로운 각오로 ‘문해교육의 대장정’에 나설 때가 온 듯하다.
최운실 아주대 교수·평생교육총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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