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사랑

강현재 구성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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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동물들의 생태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야간의 활동상까지도 추적해 영상으로 담아내는 기술과 끈기에 감탄하면서 카메라의 시선을 따르다 보면 동물들이 살아가는 의외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특히 동물들마다 특색이 있지만 어린 새끼를 길러서 독립을 시키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미가 기울이는 정성과 주도면밀함에 감명을 받을 때가 많다.

동물들은 새끼가 아주 어릴 때까지는 먹이를 구해다 새끼가 먹기 좋도록 만들어 직접 먹여주지만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는 스스로 먹도록 하고 더 자라면 먹이를 스스로 구해 먹는 방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장기간 훈련을 시킨다. 새끼는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마침내 어미 곁을 떠나 독립생활을 하게 된다.

사람이 자식을 기르는 과정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 양육기간이 보다 길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동원해 조직적인 교육을 시킨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기르는 정성이 더하다 하기 어렵고 가르치는 근본 목적이 다르다 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다만 인간이라는 종이 생활하는 방식 즉 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좀더 복잡하고 다양한 양태의 삶을 살아가는 특성 때문에 가르치는 방식이나 내용에 차이가 있을 뿐 살아가야 할 환경에 적응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부심에서 배태된 자식 사랑의 사명감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자식들에게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가능하면 오래오래 먹이를 먹여주려 하고, 사회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제 몸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은연중에 길러주는 경향이 두드러져 가는 듯하다. 이런 풍조는 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은근한 압력으로 작용해 오기도 한다. 학생 개인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이 사회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몇 년 전 영종도에서 인천 연안부두까지 철선을 타고 올 때였다. 뱃전에 선 사람들은 신이 나서 새우깡을 던져주고 갈매기들은 그것을 받아먹느라고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하며 떼를 지어 배를 에워싸다시피 하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갈매기들은 더 이상 야성의 새가 아닌 듯했다. 사람의 손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재롱 피우는 갈매기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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