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쓰는 관계로 이런 저런 모임에 불려 나가 이야기를 하곤 한다. 며칠 전엔 젊은 주부들의 문학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한 시간 남짓 문청 시절의 이야기와 그동안에 쓴 동화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강의를 마치고 단을 내려서려는데 한 주부가 손을 들더니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등단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데 그 비결이 뭐냐는 거였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한 뒤 이렇게 되물었다. 농사꾼의 농사 철학이 뭔지 아십니까. 그랬더니 그 주부는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거 아니에요”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하나를 더 덧붙였다. 농사꾼은 놀아도 논 근처에서 놉니다.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놀 일이 있어도 멀리 가지 않고 글 근처에서 노는 일, 이게 중요합니다. 제가 뛰어난 글은 아닐지라도 꾸준히 동화를 써내는 것은 되도록 글 근처에서 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앞 집에 에헴 노인이 계셨다. 항상 뒷짐을 지고 다니면서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다고 해서 에헴 노인으로 불린 분이다. 이 에헴 노인의 하루 일과는 늘 같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사립문을 나서서 집 근처 논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게 고작이었다. 남들이 어딜 다녀오느냐고 물으면 그냥 심심해서 바람 좀 쐬고 온다고만 하셨다. 점심 때도 그랬고, 저녁 때도 그랬다.
조금 커서야 나는 에헴 노인의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노인은 한시도 논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쉬어도 논 근처에서 쉬었던 것이다. 노인의 벼 수확이 동네에서 가장 많은 이유는 거기 있었다.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작가의 길에 들어섰을 때 마음속에 다짐한 것은 바로 그 에헴 노인의 농사 철학이었다. 나도 항상 글 근처에서 살자. 놀아도 글 근처에서 놀고, 잠을 자도 글 근처에서 자자.
나는 남들에 비해 안 가진 게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것이 내 차를 가져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우리 집사람은 내가 겁이 많아서 차를 못 가진다고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지만, 조금이라도 글 근처에서 지내려고 차를 안 가졌다.
만약에 차를 가졌다고 가정해 보자. 운행을 하는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앞뒤는 물론 좌우의 차를 살펴야 할 것이고, 신호등은 물론 이정표도 열심히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좋은 풍경이 있어도 눈에 담기는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글 한 줄 생각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대중교통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동차도 타고 택시도 탄다. 또 멀리 갈 일이 생기면 기차로 이동한다. 내 스스로 선택한 이동 수단이다. 대중교통은 내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다. 기차나 버스에 몸을 의지하고 산과 들녘을 바라보는 그 즐거움. 책을 펴 들 수도 있고, 상상의 날개를 펼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달콤한 자유인가. 아니 가슴 설레는 여행인가. 내 동화의 대부분은 버스나 기차 안에서 얻었다. 그러니 이런 행복한 여행을 놔두고 그 따분하기 짝이 없는 기사 노릇을 왜 자청하겠는가.
며칠 후면 새 동화책이 나온다. 서늘한 가을 바람을 타고 서점마다 놓일 새 책을 생각하면 어린애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이 역시 농사꾼의 철학 속에서 얻은 삶의 수확이다. 놀아도 글 근처에서 놀았기에 얻은 기쁨이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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