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미봉남의 추억

성근제 인하대 연구교수·중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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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던 환율과 증시 소식이 겨우 며칠 좀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대북정책을 둘러싼 설전이 또 마음 한구석을 답답하게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근 심화된 남북 관계 경색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른바 ‘통미봉남’의 외교적 고립 사태의 재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문제를 케케묵은 보혁의 구도로 몰고 가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우리가 살길은 북측으로 가는 것이다. 지하자원, 관광, 노동력 등에서 북한은 노다지와 같다. ……. 북한에 퍼주기라고 하는데 ‘퍼오기’가 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적어도 정치인으로서는 작심을 하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발언이다. 그러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다지’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이북이 노다지 나오는 곳,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이야기하며 예의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수준과 의도가 심히 의심스러운 전형적인 단장취의이다. 이런 식의 질 낮은 발언이 국가의 명운과 관련되어 있는 이 중요한 정책 방향과 관련된 무슨 토론이라도 되는 듯이 대서특필되고 각종 포털의 메인을 장식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그저 놀랍고 답답하다.

사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사용한 ‘노다지’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노다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도 어감이려니와 무엇보다도 남북의 문제를 순전히 현실적 이익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작금의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오히려 그의 현실론은 사태의 본질을 궤뚫고 있는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중국의 기본적인 태도가 바로 그러한 현실적 이익에 대한 관심에 철저히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현실적 이익’, 이것이 바로 우리 주변 6자 회담 참가국들의 외교적 방향을 결정하는 궁극적 동인이며,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와 오바마 당선 이후 한반도를 둘러싸고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외교전의 본질이다. 바야흐로 본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개성을 폐쇄하는 조치와 동시에 김정일의 신의주 공단 방문 소식을 공개하는 북한의 의도와 메시지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재임 중 북미수교를 추진하던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하려는 것은 또 어떤 외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겠는가? 이러한 사태 전개를 뻔히 눈 앞에 두고도, 여당의 대표는 “남한에는 개성 공단 같은 공단이 수백 개 있다”는 한가하고 아둔한 발언으로 배짱을 과시하고, 대통령은 굳건한 한미공조가 깨어질 리 없으므로 통미봉남이라는 단어는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는 순진하다 못해 앞날이 걱정스러운 수준의 ‘소망의 언어’로 위험천만한 외교적 역주행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거기에 전직대통령이라는 분까지 나서 유행이 지나도 한참을 지난 뻘건 뼁끼질까지 마다하지 않으시니, 그야말로 걱정스럽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는 이유이다. 이럴 때일수록 부디 우리 국민들만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사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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