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이던가 2학년 무렵에 잠깐 교회에서 운영하는 주일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하도 오래된 일이어서 주일학교에서 무얼 배웠는지 기억조차 제대로 안 나지만, 어느 일요일이던가 꺽다리 주일학교 선생님이 들려준 고구려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이야기만은 지금까지 또렷이 남아 있다. 적국의 왕자를 사랑한 나머지 자기 나라의 자명고를 찢은 저 낙랑 공주의 눈물겨운 사랑. 그건 내가 세상에 나와 최초로 접한 러브스토리였던 것이다.
그 뒤 나는 제2, 제3의 러브스토리에도 적잖은 감동을 했는데, 바로 온달과 평강 공주, 선화 공주와 서동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전자는 바보인 온달이 지혜로운 평강 공주를 만나 동량지재가 되어 나라를 크게 빛냈다는 이야기였고, 후자는 신라 선화 공주의 미모에 반한 백제 서동이 스님으로 변장하여 서라벌에 들어간 뒤 노래를 지어 퍼뜨린 끝에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들 세 이야기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로 선화 공주와 서동의 사랑 이야기를 꼽아왔다. 내가 동화를 쓰는 사람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을 얻기 위해 거짓 내용의 동요를 작사 작곡하여 저잣거리 아이들의 입을 통해 퍼뜨린 그 놀라운 기지가 너무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 놓고, 맛동(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품으러 간다’는 저 불량기(?)가 철철 넘치는 아름다운 동요.
그런데 며칠 전 이 서동요가 허구라는 보도가 나왔다. 미륵사지 석탑의 창건 내력을 밝힌 금제 사리봉안기가 발견된 것이다. 거기에는 ‘기해년(639년) 무왕의 왕후가 제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했으며, 백제 왕후는 백제 관리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서동과 선화 공주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후대에 지어낸 설화로 보아왔다는 내용도 함께 보도되었다.
이쯤 되면 지금까지 알려진 선화 공주와 서동 이야기는 설 곳을 잃게 된다. 역사는 곧 진실이기 때문이다. 헌데 마음이 왜 이리 쓸쓸한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 왔던 연인을 하루아침에 떠나보낸 기분이다.
해서 하는 말인데, 설화나 신화는 진실 여부를 떠나 그것대로 인정해 주고 물려주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건 마치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자라나는 이 땅의 어린이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같은 시간일지라도 햇볕에 그을리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설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달빛에 젖어 이미 설화로 굳어진 시간을 굳이 끌어내어 다시 햇볕에 그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설화는 그 자체로 두는 게 오히려 가치 있는 일이다.
과학의 힘에 의해 달의 정체가 낱낱이 세상에 밝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진실에 앞서 낭만적 손실을 더 가슴 아파하였다. 특히 달 속에는 토끼가 방아를 찧고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상상해온 사람들의 실망은 얼마나 컸던지.
설혹 선화 공주와 서동의 사랑 이야기가 허구라면 좀 어떤가. 진실이 중요한 만큼 허구가 그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동요의 배경인 익산 지역에서는 실망감이 너무 커서 ‘패닉 상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1천4백년 동안이나 내려오던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야기가 역사라는 그물에 의해 허구로 판명됐으니 정신적 공황을 일으키고도 남을 만하다. 설화에까지 손을 대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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