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가 발목 잡는 날

조장호 경영학박사·전 한라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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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터족’(freeter)이란 신조어가 등장 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생활의 자유(free)에다 임시로 일하는 사람, 즉 아르바이터(arbeiter)의 마지막 음절(ter)을 덧붙인 합성어다. 개인주의에 익숙한 선진국에서 직장을 가지지 않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해 나가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붙여진 말이다.

이들은 조직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롭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해서 스스로 직장을 포기한 이른바 자의의 프리터들이다. 때문에 원인 측면에선 어쩔 수 없어서 아르바이트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결과적 위협은 서로 다르지 않다. 통계청이 지난주에 발표한 고용동향이 새삼 이런 프리터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1월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395만9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지금이 졸업시즌이니 직장문턱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은이들이 여기에 가세하면, 이달 말 통계는 필경 4백만 명을 훨씬 넘어서게 될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쥐꼬리만한 임금에 만족해하는 프리터족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자발적인 빈민계층, 즉 하류지향이다.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나 저임금 비정규직에 만족하는 것 역시 부득이한 선택이긴 하지만 하류지향이란 결과는 마찬가지다.

물론 선진국과 달라서 우리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타의적 프리터들이다. 여기에 각종 고시준비라든지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가기 위해서 당장 취업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필요한 돈을 조달하는 잠정적 프리터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의 프리터들 모두가 국민경제의 걸림돌이 되리라는 단정은 할 수 없다. 이들은 누가 보아도 취업여건이 좋아지기만 하면 직장을 얻어서 곧장 정상적 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 취업여건이 언제 좋아질 것인지, 오히려 더욱 나빠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가 문제 중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10년 가까이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하는 이른바 청년실업에 시달려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다가 지치거나, 아예 엄청난 경쟁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서, 또는 입사연령을 초과해서 스스로 구직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계속 늘어나 왔다.

통계를 보면 취업할 계획이나 생각 없이 그냥 쉬고 있는 사람들이 176만6천명이다. 아르바이트 인구의 거의 절반에 가깝다.

정부는 4대강 정비, 초고층 롯데빌딩, 부동산 대책 등 각종 토목 건축사업과 일자리 나누기, 대규모 인턴제, 녹색창업지원, 감세 등등 많은 시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저임금 임기응변적 방책들이다. 프리터가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인 빈곤층의 양산을 막기 위한 대책은 없다.

그렇잖아도 우리의 계층 간 격차는 크게 나빠져 왔다. KDI자료에 따르면 우리 중산층은 96년의 68.5%에서 2천6년엔 58.5%로 떨어졌고, 빈곤층은 11.3%에서 17.9%로 증가됐다. 경기가 한참 좋은 때의 수치가 이러한데, 불황기인 작년과 금년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됐고 되리라고 예상하기가 결코 어렵지 않은 것이다. 불황기엔 일반적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된다. 중산층은 내다 팔고 부유층은 싼값에 이를 매집한다. 중산층 대책에 못지 않게 신규 경제활동자원의 하류화 방지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공공부문에서부터 상용고용을 확대하고 취업연령 제한을 철폐하고 장기간 취업 대기자의 고용기회를 적극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류의 증가가 결국은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과 계층 간 균형발전을 발목 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장호 경영학박사·전 한라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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