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때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가 있다면 그 나라는 위기 극복에 성공할 수 있다.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은 국민통합을 이끌어 내는 지도력이고, 지도력은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투철한 가치관과 높은 도덕성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인간존중과 정직성,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균등과 개방성은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최우선의 가치들이다. 국가 지도자는 그런 가치로 단단히 무장하고 자신의 지도력을 항상 강력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가장 큰 위기는 이 같은 최우선의 가치와 지도력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데 있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해 갈등을 조정하는 강력한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경쟁력과 효율성을 도출해내는 경제적 지도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경제적 지도력은 확고한 민주적 가치관과 도덕성, 치유와 통합의 공동체적 국민정신을 정립하는 문화적 지도력에 의해 견인되고 완성된다. 문화적 지도력은 신뢰회복과 위기극복의 핵심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이맘때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1년이 지난 현재 국민 가운데 과연 몇이나 대통령의 대한민국 선진화 약속을 믿고 있을까. 최근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구태여 인용할 필요도 없이 이명박 대통령 1년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국민이 당초 가졌던 큰 기대가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은 집권 초기 촛불집회에 대처하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통치경륜의 미숙함을 목격하면서부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은 2월25일 저녁 국무회의를 소집해 “각 장관은 국가에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자세로 위기 극복에 임해 달라”고 하면서 “살려하면 죽고 죽기를 무릅쓰면 산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빌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한 때임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 주제는 지난 1년간의 국정운영 시스템 평가와 개선 방안 등이었다. 그간의 국정운영 시스템에 대한 강도 높은 반성이 쏟아 졌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지난 1년은 소중한 한 해였다.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실수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청와대 소식을 듣는 국민의 심정은 참으로 착잡하다.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에 의해 왜곡됐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올바로 일으켜 세우고, 747공약으로 상징되는 경제의 재도약을 통해 참다운 자유와 민주를 구현하는 선진화 국정개혁을 고대했던 국민들에게 지금 남겨진 것은 허탈한 실망이다. 국민의 이런 심정을 짐작했기에 장관들이 강도 높게 반성하고 대통령은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정부를 괴롭힌 반보수연대세력의 집요한 저항에 대한 국정운영 철학이나 시스템에 대한 강도 높은 반성이 있었다면 그에 걸맞게 레토릭이 아닌 국정 리더십 쇄신의 실천적 징표라도 보여 줘야하는 것이 아닌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예상 못 했다는 핑계로 정부가 면책될 수 없는 것이고, 마이너스 성장의 경제침체 위기가 일자리 창출을 외치기만 한다고 해결될 것인가. 이 나라가 다시 전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끌어 내는 강력한 정부의 믿음직한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다. “멀리 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의미를 갖게 하려면 대통령은 무엇보다 문화적 지도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자신감과 희망의 불길을 지펴야한다. 국민 대통합의 선진화 시대를 열어 갈 문화적 지도력을 위기극복의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 진정 경제대통령이 되려면 먼저 문화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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