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 단속

성근제 인하대 연구교수·중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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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한두 해 전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옷차림 때문에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춘절 연휴 기간에 농촌을 둘러보기 위해 산둥성 어느 마을인가를 방문했는데, 이 때 원자바오 총리가 입고 온 점퍼가 10여년 전 어느 채소 시장을 시찰할 때 입고 있었던 바로 그 점퍼라는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대국 중국의 총리가 점퍼 하나를 10년 넘게 입고 다녔다는 사실이 그가 이제까지 보여준 청렴한 관리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일파만파의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떤 신문은 원자바오가 밑창이 헤진 운동화를 몇 번을 기워 신고 다녔는지를 발굴하여 보도하는 집요함을 선보이기도 했고, 기사마다 그를 칭찬하는 감동적인 댓글이 줄을 이었다. 국내의 한 논자는 원자바오의 부인이 중국 보석협회 부회장이며, 그의 아들과 사위가 거대 기업의 총수라는 등의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의 행실이 계산된 정치적 쇼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 원자바오의 몸에 배인 검소함 자체에는 진실하고 감동적이라 할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필자 역시 이 기사들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원자바오의 청렴이 더욱 빛나 보이게 만든 것이 중국 공산당 관리들의 기가 막힌 부패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청렴을 빗대어 당 관료들의 부패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중국의 사이트들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중국 인민들이 설마 그것을 전혀 모를 리야 있겠는가마는….) 그렇다면 그의 청렴에 대한 일화는 중국 사회의 부패를 치유하는 약이 되기보다는 중국 사회의 부패에 대한 감각(통증)을 둔화시키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 때문에 청렴한 지도자에 대한 부러움 한 켠으로 중국의 민주화는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겠구나 하는 씁쓸함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한국에서는 해외 순방 길에 오른 대통령의 농담 아닌 농담 한 마디가 농림부 장차관의 패션을 뒤바꾸어 놓는 일이 일어났다. 농림부 장관이 왜 외교부 장관처럼 양복을 입고 다니느냐는 각하의 한 마디에 장관이 쑥스러움을 마다 않고 작업복 패션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국무회의에도 작업복 차림으로 가겠다고 하고, 차관들에게도 작업복을 입고 공식회의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덩달아 농림부 소속 공무원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작업복 입은 장관 앞에 양복을 입고 보고를 해야 하나, 작업복을 입고 보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양복에 넥타이만 풀고 보고를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건대, ‘작업복 쇼’에 만족할 사람은 대략 대통령밖에 없는 것 같아 보이니, 이 사태를 두고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스럽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이제는 이런 저급한 쇼에 현혹되지 않는 국민들이 있어 역시 희망이 있다고 해야 할지 좀 헷갈린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때 아닌 드레스 코드로 고민 깊으실 장관님께 조언 한마디 드리자면, 애초에 국민 시선이 아니라 대통령 시선 의식하고 내린 지시이니 만큼 국무회의에는 점퍼 차림으로 가더라도, 진짜로 농촌 시찰 나가실 때에는 행여 점퍼 차림으로 가지 않으시기를 권해 드린다. 오랜 가뭄 끝 단비로 이제 막 바빠지기 시작한 봄날의 농촌 들녘에 말끔한 점퍼차림으로 내려가시면, 높으신 나리님들 볕 좋은 춘삼월에 야외복 갈아 입고 야유회 나오신 것으로 오해받기 딱 좋으니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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