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사회에서 발효 사회로의 변화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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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에서 진보는 파벌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고 한다. 진보는 말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서로 잘난 척하면서 경쟁하다가 망한다. 반면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는 과정에서 부패한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증명이나 하듯이 지금 이명박 정부 1년을 지나면서 부패 사건이 화두가 되고 있다. 물론 현 정부에게만 귀책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정을 보여주고 있다. 8급 공무원이 복지 자금을 횡령하는가 하면, 청와대 고급 공무원도 청탁을 받고 있다. 한편에서는 기업인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자금을 뿌렸다. 그리고 여기에 성을 수단으로 하는 문제도 개입되고 있다. 한마디로 부패의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부패의 모든 잠재성이 현재화되고 있다.

한때 부패는 우리 사회가 가난하고 국가 발전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과도기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가 발전이 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현상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부패는 자기 영속성을 갖고 국가 발전 단계에 따라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국가의 강력한 의지와 국민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부패의 자양분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러한 부패가 등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패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 부패는 마약과 같은 습관성이 있다. 한번 맛을 본 사람은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둘째, 부패는 암세포와 같은 확산성이 있다. 조직에서 한두 명이 부패하면 공범 관계가 형성되고 조직 문화에서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하게 된다. 이번에 양천구에서 8급 공무원이 복지 예산 26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보도되면서 감사원이 서울 용산구, 전남 해남군 등에 감사를 해보니 같은 유형이 적발되었다. 전국적으로 이러한 비리가 만연해 있었던 것이다. 셋째, 부패는 은밀성을 가지기 때문에 밝혀지기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이다. 부패의 과정에서 현금 거래, 돈 세탁, 가명계좌 등 각가지 수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부패의 과정에서 사회 체제 전체가 왜곡된다. 넷째, 부패는 보충성을 갖고 있고 특혜의 근거가 된다, 마치 돈 많은 기업가가 성실한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조건 없이 자금을 건네는 시늉을 보이지만, 자본주의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 단지 혜택의 고리가 길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건네진 뇌물보다 더 큰 특혜가 거래된다. 그래서 부패 사회학에서 주장되는 “돈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진실이 침묵한다”는 것이 설득력을 갖는다.

최근에 나타나는 부패 사건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한국 사회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기관장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한때 경기도가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권에 있었으나, 지사의 직접적인 의지 표명 이후에 상위권으로 진입한 것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관장이 모범을 보이고 기관장이 강력한 의지를 보일 때 조직 문화가 바뀔 수 있다. 요령을 통해 유능해 보이는 부패한 직원을 과감히 도려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DNA를 바꾼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부패에 대해 불감증을 가질 것이 우려된다. 갖가지 사건을 보면서 우리사회에서 부패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오해까지 있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냥 스쳐가는 에피소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토양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생물의 화학적 반응 작용에서 부패와 발효가 있다. 부패는 썩어서 냄새를 풍기지만, 발효는 유기물을 창출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지금 우리 사회를 재창조시키는 힘이 될 수 있는 발효의 작용을 하는 미생물의 인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발효의 작용이 선순환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보여주는 총체적인 부패 사건은 그런 사회를 설계하는 모두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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