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을 주창하던 노무현 정부에서 일찌감치 포기한 두 가지의 과제가 있었다. 하나는 경기 통계청, 경기 중소기업청, 경기 노동청처럼 중앙정부 기관을 지방에 두는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지방자치단체와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국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이관하는 것이었다. 둘 다 중앙정부 공무원의 치열한 반대에 부딪히자 대통령이 직접 포기 선언을 했다.
특히 지방세 신설은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두고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아젠다였다. 국민의 조세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고 지방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국세인 소득세와 소비세의 일부를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로 이관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당시 국세를 담당하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지방세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결국 논의를 중단시키고 위원회의 기능도 마비됐다. 지방자치를 열망하던 많은 분권론자를 실망시킨 사건이었다.
그 논의가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출발했다. 부동산 위주로 구성된 지방세정에서 세수입의 한계가 나타나는 반면 각종 복지비 부담을 떠안고 있어 재정 적자가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월 20일 국가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서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를 신설하자는 안이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처 간 갈등이 노정되고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입 구조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우리의 지방자치 수준과 맞물려 있는 쟁점이다. 집을 나가서 하숙을 하고 있는 자식이 아버지로부터 일일이 용돈을 받아서 생활한다면 독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80% 대 20%다. 중앙정부가 전체 세입의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금을 지출하는 주체로 보면 중앙이 45%를 사용하고 지방자치단체가 55%를 사용한다. 즉 중앙정부가 자금을 가지고 간 다음에 지방정부에서 어떤 용도에 사용하라고 지시를 해 다시 내려 보내는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정책 의지를 가지고 사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시키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 지방행정을 ‘천수답 행정’이라고 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고 우리의 능력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원칙이다. 그럴 경우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재원의 충분성이다. 최근 시·군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재정 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통합을 해 재정력을 확충하자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은 지방세 구조를 튼튼하게 만들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재정 자립이 낮은 단체들끼리 묶어 본들 재정자립이 제고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우리의 논의 구조에 비해 일본은 ‘3위1체 개혁’이라고 하는 매우 적극적인 재정 개혁을 추진했다. 교부금이나 보조금과 같은 중앙의 지원을 대폭 줄이고, 그만큼 지방세 확충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원이양이 약 3조엔이 됐다. 이 정도의 개혁은 우리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과제라는 공감대가 지방세 개혁에 속도를 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역의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는 조용하다.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서구의 경우 민주주의는 조세 저항에서 출발했다. 내가 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 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출발점이 세금 제도이다. 내가 낸 자금으로 잘못된 도로가 건설되고, 불필요한 건물이 건설되고, 의미없는 행사가 진행된다면 지금보다 더 행정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세의 일부를 분리해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로 하자는 안은 정부의 활동에 대해 주민이 보다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역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의사 표시가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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