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귀퉁이에서의 단상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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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처럼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다시 충격으로 끝을 내었다. 한편 ‘생각을 같이 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1주일이었다. 검찰이 사건 종결을 선언했지만, 역사는 새로이 시작되는 감동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감동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곰곰이 생각을 해야 할 과제를 제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모습으로 서울에 있는 버스 전용차선은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아이러니컬하게 버스 전용차선은 이명박 서울 시장 시절에 만들어 진 것이긴 하다. 고급승용차가 혼잡한 도로 교통에 막혀 길게 늘어서 있는가 하면, 승객을 가득 태운 시내버스는 달리고 있다. 불편한 고급승용차 속에서는 불만이 토로하겠지만, 숫자로 평가하면 편리를 본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길게 늘어선 승용차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1인이나 2인이 타고 있는 반면, 시내버스에는 40여명이 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돈의 가치로 인간이 평가되는 ‘1원()1표주의’다. 사실 고급 승용차 안에 있는 사람의 활동이 미치는 경제 기여도가 높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1인1표주의’이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격에 근거하여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려고 했던 것이 중세 봉건체제를 허물고 근대국가로 전환한 원동력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국가 형성기에 산업화의 과정을 지나면서 분명 소외된 계층이 있었지만, 우리는 급속한 성장의 햇빛만 보았지 그늘진 곳을 보지 못했다. ‘1인1표’보다는 ‘1원()1표’가 지배했다. ‘돈이 말을 하면 모든 진리가 침묵한다’는 정치학의 격언처럼 산업화만 추구하면서 인간적 가치를 고려하지 못하는 체제였다.

1987년 6·29 선언에서 상징된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그간 20년은 이러한 우리의 체제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히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있었다. 우리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정치 엘리트 간의 권력 승계가 아니라, 시민이 만들어낸 정치 지도자였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대는 질풍노도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덮어두고 갈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 시대였고, 그래서 어떤 변화를 향해 달려온 시대였다. 때로는 상처가 소독제 처리 없이 햇빛에 비치는 바람에 더 고통스럽기도 했다. 제기했던 모순들을 얼마나 해결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지금의 시간에서는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안으로 곪아 터지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분출시킨 카타르시스의 시대라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는 이유이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진보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래서 곳곳에 위험이 있다. 변화의 과정에서 갈등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를 어느 수준에서 조절하느냐에 따라 급진적 진보와 합리적 진보로 구분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를 통해 희망을 보는 사람과 위험을 보는 시각이 공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제는 역사발전이라는 주제를 생각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성숙을 마련하기 위한 이성의 시대를 필요로 한다. 단절의 역사가 아니라, 계기(繼起)의 역사가 되기 위해 이 시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보수 정권은 보수정권으로서 역사적 소임을 해야 할 시기다. 진보를 배격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시간보다는 자기 역할에 충실히 하는 시간을 찾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역사발전의 의미를 줄 것인가를 차분히 생각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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